‘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두 번이나 읽다가 포기한 나.
국어국문학 전공자인데 이렇게 살아도되나.
태백산맥도, 토지도 몇년에 한번씩 시도했다가 하차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도 결국 토지 읽기는 실패인 것 같고,
친구와 하는 독서모임에서
박경리 작가의 다른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김약국의 딸들 책검색 결과

첫챕터의 통영 공간 묘사가 정말 생생했고 인상적이었다.
배경묘사에 별 공을 들이지 않는 소설들을 최근에 읽다가
이렇게 공들여서 공간이 머릿속에 그려지게끔 하는 글을 읽으니
공간에 대한 작가의 애정도 느껴지고 신선했다.

소설은 전체 분량도 짧고,
약간 막장드라마 보는 느낌으로다가-
도대체 끝에 가서 어떻게 되나, 어디까지 하나 두고보자 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소설이었다 정말로.

등장인물들, 특히 여성들의 삶이 너무 처절하고 불행해서 읽느라 힘든 점도 있었다.
자업자득인 부분도 분명 있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괴로운 상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이 더 많아 보였다.
누가 봐도, 어떻게 봐도 비극적인 결말로 흔들림 없이 진행되는 서사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중 가장 가여운 인물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친구와 얘기 나눴었는데
내 원픽은 단연 용옥이.
본인이 잘못한 게 딱히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불행하게 살아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가 맞이한 결말부분까지 진짜 숨 돌릴 틈이 없는 불행서사였다.

의외로 친구는 용빈이를 꼽았다.
제정신으로 사는 사람, 신식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모두들 자신에게 의지하는 느낌이 들고 온 가족에게 닥쳐오는 불행 속에서 견디고 수습하는 역할이 맡겨진 사람 같아서 가여웠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 지독하다 싶은 인물들은 종종 있지만
‘김약국’이 최근 읽은 소설 중에 으뜸이다.
정말 지독한 회피형의 인물,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내게는.

작품 말미에 김승종이라는 분의 작품 해설
‘운명의 초극과 존재의 용기’가 실려있는데
멸시당할 일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김성수와 용빈을 ‘존재의 용기’를 지녔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김성수에 대한 내 의견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딸 결혼식마저도 회피하는 인물을
용기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나,
견디기만 하는 것도 시대 상황을 고려해서 용기로 봐야 하는걸까.

더 나이가 들어서 읽으면 평가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시대상황을 제외하면
아내와 딸들이 불행해지는 근본 원인 제공을 김약국이 한 것으로 생각된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고 그의 선택은 주로 회피였다고 보이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 꼭 들러봐야겠다.
그리고 휴직 기간에도 실패했는데 과연- 이지만, 언젠가 ‘토지’도 완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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