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를 읽었다.

독서모임의 멤버 중에 영문학 전공자인 분이 계셔서,
종종 영원히 모르고 넘어갔을 것 같은 영미문학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다.

이번달의 책도 그분께서 추천해주셔서 알게되었고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밀리의 서재>에는 없었고, 알라딘에서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책검색 결과

편지가 아닌 부분들도 있지만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은
바로 서간문의 특징을 소설로 끌어들인 점이다.

이북리더기로 읽었다면 흑백의 전자잉크로 읽었을 텐데,
아이패드로 (눈 건강은.. 나중에 생각하자) 읽어서 의도된 대로,
레드와 블루의 편지가 색으로 구별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거 완전 <닥터후>인데?’,
‘내가 닥터후를 좋아해서 모든 시간여행 창작물들을 다 닥터후라고 생각하면서 읽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마지막에 저자 소개 페이지를 보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낯선 저자의 이름이었지만, 닥터후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뻐하게 됐다.

나도 열심히 드라마를 보긴 봤는데,
소설판을 읽고 소설로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구나를 깨닫는다.

멈추지 말고 읽으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 멈추지 말고 싸우세요. 우리 모두 여기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했다.

한국어판 표지의 이미지가
레드와 블루, 그리고 ‘시간의 실’을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최근, <천개의 파랑>이나 <파견자들>을 읽기는 했지만
이 작품은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시공간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평범한 인간을 비롯해서 동물과 식물까지 다양한 존재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입장벽이 될 수 있고, 옮긴이도 토로했듯이
영미 대중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작가들의 ‘현란한 입담’을 온전하게 즐기기는 힘들다.
옮긴이가 달아주는 주석을 보고, 더 궁금한 것들은 때로는 검색해보면서 더 폭넓게 즐기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초반에 좀 참고 버텨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비록 어떻게 첫눈에 반한 것일까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깊이 빠져드는 사랑의 감정을 즐기면서 푹 빠져서 읽게 된다.

…편지는 구조물이지 사건이 아니니까. 네 편지는 나에게 들어가서 살 곳을 마련해 줬어.

하지만 나에게 너는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부족한 편지야.
… 나는 너에게 하나의 맥락이 되고 싶어. 너도 나한테 그런 존재가 돼 주면 좋겠어.

두 사람의 절절한 편지를 그 내용과 표현에도 감탄하지만
편지를 전달하는 비밀스러운 방식 또한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된다.

초반에 나오는 물 분자의 운동을 숫자로 변환한 MRI 측정값이나,
나이테, 화분의 독초 등등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는지,
시간과 공을 들인 편지의 내용과 전달 방식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 정말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손으로 적어서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
이메일로 적어서 보내는 편지의 기억이 남아있지만
이제 너무나 간단하게, 순식간에 전달되는 인스턴트 메시지의 시대로 넘어와버렸다.
점점 편지가 주는 시간 여행의 매력은 사라져가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다정한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 적었던 편지쓰기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제목의 ‘당신들’이 뜻하는 바와,
마지막 블루의 편지에서의 ‘우리는’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아, 결국은 사랑이구나로 끝맺게 된다.
당황스러운 시작처럼 후일담 없이 이렇게 끝난다는게 살짝 아쉽기도 한 결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의 완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남겨두는 영리한 결말이기도 하다.

강추하는 SF소설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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