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을 읽었다.

이북리더기를 들고는 왔는데, 내 이북리더기는 더 이상 업데이트 제공도 안되는 크레마카르타.
그래서 예전에 다운로드 해둔 책만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이 있어서 언젠가 읽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기기를 이제와서 처분하기도 머하고, 백팩에 넣어왔다.
새 이북리더기들이 많이들 나오는데 기기의 수준(?)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오르는거 아닌가 싶을만큼 고가로 나오는 것 같다.
요즘엔 팔마였나, 휴대폰 사이즈의 이북리더기에 자꾸 눈이 가는데
한국에서 할인받아서 사는 것보다
싱가폴 아마존에서 사는 것이 훨씬 비싸기에(ㅠㅠ) 소비 안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아이패드로 밀리의 서재 앱을 이용해서 독서를 하고 있다.
눈이 시릴만큼 오래오래 책을 읽는 일은 사실 드물다.
그래도 밀리의 서재 앱이 있어서 싱가폴에서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천 개의 파랑 책검색 결과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재미있다, 술술 읽힌다는 후기를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는데
어쩐지 김초엽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을때 받았던 느낌과 매우 유사하다.

SF적인 요소가 넘쳐나서 이해하느라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그저 착하고 따뜻한 작가의 시선으로 세계관 속 인물들을 응원하며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수많은 후기들처럼 술술 읽히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수 있을만큼 자극적인 요소는 없었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몸값’이라는 표현이 사람에게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쓰인다는 사실에 가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프로의 세계에선 당연한건가 싶다가도, 돈으로 모두 환원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마저도 점점 둔감해져서 빈도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물건들의 ‘몸값’을 얘기하고 있다.
비용과 수고를 들여 고치기보다는 대체하는 것이 더 쉬우니까
그저 폐기해버리는 ‘콜리’같은 존재들을 생각해서 그런지,
사람으로 읽혀서 첫문장에 밑줄을 쳤던(하일라이트로 클릭…) 것 같다.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라는 두번째 문장도 충분히 공감한다.
없었을 때에도 잘 살아왔지만,
이제는 없으면 유별나게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으로, 멋과 유행을 모르는 촌스러운 사람으로 느끼게끔 해서
가지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수많은 직접광고, 간접광고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필요의 발명에 속아 넘어간 건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콜리가 스스로 깨닫거나 책에서 읽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더 정확하고 지혜롭다는 인간의 삶에서 나온 진리였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처음에는 좀 대책없는 소리 아닌가 싶었는데,
투데이와 콜리, 복희를 생각하면서 점점 받아들이게 되는 문장이었다.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 순간이
결국 힘들었던 기억들을 이긴다고 살아가게 한다고 납득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투데이에게 어쩌면 소용없을 영양제를 다시 맞히고 경마장을 빠져나가던 길에서 북문 관리실에 다영과 함께 있는 은혜를 봤지만 일부러 보지 못한 척 지나쳤다. 은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힘없고 겁 많은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창피했다. 네가 그토록 아끼던 그 말이 연골이 닳았다는 이유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보고만 있으므로.

‘힘없고 겁 많은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창피했다.’ 이 문장이 확 꽂혔다.
아이들로 가득찬 교실에 서서 유일한 어른으로서 내가 창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당연한 가질 수밖에 없는 질문에도 대답을 해줄 수 없고,
나도 동의하지 못하는 가치관을 주입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동의한다는 어지간한 타협들로 넘어갔던 문제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생명과 관련한 일이 생각나서 … 그럼 10년이 흐르는 동안 난 뭘했나, 지금의 나는 그럼 그때와는 다른가 하는 괴로움도 들었다.


지구가 인간만의 것은 아닌데,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인간만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인간들 외의 존재, 동식물이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지능을 가진 존재에게까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나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세계를 확장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재미 면에서도, 주제 면에서도 추천하는 소설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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