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을 읽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두 달간 ‘배움의 발견’을 읽었다.
이북으로 읽어서 잘 몰랐는데 사실은 두께가 꽤나 두껍고,
전반부가 정말 읽기 힘들기 때문에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 같은 책이다.

배움의 발견 책검색 결과

읽는 내내 저자가 1986년생이 맞나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본인이 태어난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뜻의 말들을 많이 들어봤지만,
태어난 가정 환경에 의해 현대의학, 공교육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읽기에 괴로울 정도였다.

전반부를 꾹 참고 읽으면 후반부는 그래도 술술 넘어간다는 친구의 말에
정말 꾹 참고 앞부분을 읽었다.

인물들이 다치고 괴로워하는 묘사가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읽기가 더 힘들어진 것 같다.

후반부는 주인공이자 저자가 가정으로부터 점점 떠나 독립하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확실히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응원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 참신한 시각에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모와의 관계를 포기해야 하는 괴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래부터는 밑줄 그은 문장들을 몇 적어본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것이 내 배움이요 교육이었다. 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를 흉내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주인공의 가족 구성원 중에서 그나마 위안을 주고 힘이 주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말고 다른 형제, 자매가 아무도 없었다면 결코 가족을 떠나 변화된 삶을 살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 바로 자신이 누군가의 소유인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 번도 야생에서 지내 본 적이 없는 그는 〈다른 세상〉에서 자신을 부르는 그 미치게 만드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세상, 누구도 태우지 않을 수 있는 산 위의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주인공이 말에게 감정이입 한다고 생각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한번 깨닫게 된 이상, 모르고 살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도 아버지는 계속 그 자세로 서 있었다. 아버지의 그 모습은 언제까지나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에 새겨진 그 표정. 사랑과 두려움과 상실의 표정. 나는 아버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벅스피크에서 마지막으로 지낸 밤, 내가 졸업하는 것을 보러 오지 않겠다고 말했던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슬쩍 흘리듯 말했었다.
「네가 미국에 있으면,」 아버지는 속삭였었다. 「우리가 널 데리러 갈 수 있어. 어디에 있든지. 들에 묻힌 지하 탱크에 연료가 4000리터나 있으니 종말이 오면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어. 안전한 곳으로 말이야. 하지만 네가 바다를 건너가 버리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성격이고 가족들을 힘들게만 한다고 느껴지던 주인공의 아버지였지만
이 부분에서는 짠하고 마음이 아팠다.
바다를 건너가 버리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주인공이 계속 부모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고 여겨졌을 때 응원하면서 읽었지만
한 번도 그 부모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그저 자식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괴로운 부모의 마음을 읽게 됐다.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과거와의 순조로운 연속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무게 또한 상당하겠지만
주인공의 삶에 있어서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정신의 소유권’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정말 어릴 때에는, 간혹 그 이후에도 부모가 자녀를 소유하듯이 키우고 원하지 않는 것을 다 차단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배움을 발견’한 사람, 다른 가능성과 미래를 본 사람을 더 이상 소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족에 관해 생각했다. 거기에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의무가 다른 의무 ─ 친구, 사회,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 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크기와 빈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겪는 충돌과 선택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
이 주인공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크게 충돌한 일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와 아버지를 가르고 있는 것은 시간과 거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아다. 나는 아버지가 기른 그 아이가 아니지만, 아버지는 그 아이를 기른 아버지다.

변화된 자아를 지닌 자녀를 대하는 일은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 자신이 길러낸 존재로만 바라보는 부모에게는 자연스럽게 시간과 거리가 자녀와의 사이에 놓일 것이고 점차 멀어질 것이다.

책 제목이 “배움의 발견”이어서 이런 내용일 줄 상상도 못하고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이 책이 이렇게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니 놀라운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는데,
그래도 완독하고 나니 이 책이 주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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