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한동안 ‘소년이 온다’를 읽은 충격과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큰 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도 읽어보았지만
내겐 여전히 ‘소년이 온다’의 작가다. 한강은.

독서 모임의 11월의 책으로 추천해서 한강 작가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여러 모로 ‘소년이 온다’와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고
읽는 내내 4.3을 생각하며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검색결과

한 세대를 지나 덤덤하게 짚어나가는 학살의 아픔이었다.
‘소년이 온다’에서 느꼈던 아픔, 생생하게 현장감이 느껴지는 아픔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아픔을 겪고도 삶을 버텨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아픔을 다루고 있다.

흰 눈의 이미지, 흰 새의 이미지 그리고 흰 옷의 이미지까지.
시인이자 소설가인 작가답게 소설을 시처럼 썼다고 생각된다.

읽는 내내 질문하고 곱씹게 된다.
1. ‘작별하지 않는다’는 뜻은 뭘까.
2. 경하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것일까.
3. 모호하게 의도한 것이겠지? 죽은 것은 경하일까 인선일까, 혹은 둘다일까. 아니면 모두 환상일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바다를 즐기면서
늘 행복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제주.
2018년 5월에 다녀온 제주4.3평화공원이 생각났다.

2018년에 방문했던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공원에서 봤던 문구가 기억이 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4.3 뒤에 그 어떤 말도 붙이지 못한 채 그저 4.3으로 부르고 있다고.
소설의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와 상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휴가의 공간으로만 기억되는 제주지만
그 땅에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유쾌하게 웃고 즐길 관광지는 아니지만
제주를 방문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제주4.3평화공원에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기억해야 하니까.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인선의 질문들로부터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4.3 뒤에 그 어떠한 말도 붙이지 못하고, 정의하지 못한 채
그저 4.3이라는 말로 기억하고 있다는 제주4.3 평화공원에서 본 장면들이 기억 속에 떠오른다.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작가의 말을 보면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썼다.
비극적으로 떠나 보낸 혈육에 대한 사랑과 그 고통에 대하여
한 세대를 건너와 격정을 내려놓고 다소 담담하게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떻게 그렇게 가혹한 짓을 할 수 있을까.
공산화를 막기 위한 절멸의 과정에서 갓난아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그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포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종전은 아니고 휴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유래없이 오랜 기간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평화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끊임없이 기억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고통이 느껴져 힘들기도 했고 명확한 결말과 서사의 완결을 바라는 마음에 툴툴거리기도 했지만
강력하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