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었다.

독서모임 12월의 책으로 정말 오래간만에 최신간, 베스트셀러를 선정하게 되어 읽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추천 유튜브 영상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는 예상하고 읽었다.

모임 5일 전에 책을 구매해서 좀 급하게 읽게 되었는데
소설의 길이가 짧아서 큰 무리없이 기한 내에 읽을 수 있었고,
오히려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독서할 때의 상황이나 몸 컨디션이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책검색 결과

이 소설은 엄청난 지적 유희를 제공하면서도
산뜻하게 느껴지는 짦은 분량으로 인해 편안하게 읽히는 가족소설이었다.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는 2001년 생으로 엄청 어린데
소설은 마치 수십년 전에 쓰여졌다고 해도 믿어질만큼 ‘요즘 느낌’이 없다.
주인공 도이치는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교수로
근래에 읽은 작품들 중에 가장 ‘나이든 주인공’이다.

작가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또는 학자에 대해
어마어마한 환상을 가진 건 아닐까?
아니면 소설의 분량상 인물의 지적탐구심만을 부각하려다 보니 생활의 흔적들을 날려버리고 이렇게 되었나 싶을만큼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이상적으로 그려진다.
장인어른도 교수이고 본인의 예비사위도 서로가 학문적 후계자나 마찬가지인 사제 지간이다.
시카리라는 인물의 행동도 참 흥미로운데 현실사회라면 그로 인해 겪을 불미스러운 피해들은 어영부영 넘어가고
주인공과 나누는 인간적인 유대감과 우정을 잘 간직한 채로 수습된다.

명언들이 소설 곳곳에 넘쳐나고 명언의 출처에 대한 탐구심 하나로 줄거리를 이끌어 간다.
각주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역자 덕분에
(이런 류의 책은 정말 역자와 편집자의 친절함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오래간만에 읽는 일본 소설이라 인명이 자꾸 헷갈리고,
일본어에 기댄 언어유희는 즐기기 힘들었지만 각주가 친절해서 다행스러웠다.

읽으면서 알고 있던 명언의 출처를 재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명언들을 알게 되어 밑줄도 긋고
명언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잘 부리는 01년생 어린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살아 있는 한, 서로 사랑하는 한 의미 있다는 생각을 결말에 가서 하게 된다.

읽는 내내 작가가 괴테에 가지는 애정이 느껴졌고,
어쩌면 도이치라는 인물을 창조해서 만들어낸 거대한 팬레터에 가까운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다.
<파우스트>도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
2026년엔 고전을 더 많이 읽자.


독서모임을 하면서 멤버들과 소설에 실린 명언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명언들도 서로 나누게 됐는데
내가 고른 건 이거였다.

니버의 기도문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이십대 초중반 수험생활을 할 때 기독교신자도 아니면서
포스트잇에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던 글귀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좀 흘렀다고 의미가 다르게 읽히는데
그때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얻고 싶어서 이 말이 눈에 들어왔었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내가 노력한 대로 흘러간다는 믿음으로 살아오다가
그게 얼마나 오만하고, 틀린 생각이었는지를 배웠기 때문에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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