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둘이하는 북클럽.
어딘가에서 추천을 받아 저장해두었었는데 같이 읽어보자는 의견에 냉큼 따랐다.
외국소설은 남이 추천해야 읽게되고
아마 친구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작가였다.
원제는 ‘Bewilderment’인데 한글판 제목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 생태주의 문제의식을 다룬 비문학 책으로 생각했었다 처음엔.
처음에는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로빈보다,
싱글 대디로 고군분투하는 시오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서 책장이 잘 넘어갔다.
내내 불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결말까지도, ‘결국엔!!’ 하는 마음으로 끝이 나서 좀 허무하기도 했다.
약물에 의한 치료에 동의하지 않고,
지인이 가진 신기술로 아이 엄마가 가졌던 환희의 감정에 접촉하게 해주는 아빠라니.
뇌 복제를 소재로 하는 여러 컨텐츠들이 떠올랐고
그렇게 된다면 죽음이란 무엇이며
사후에 내 정보에 대한 권리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 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루하루 부모와 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나가야 하는데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어서 불가능했던 죽은 엄마와의 감정적 공유를
기술을 통해서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감정적 공유를 해준다는게
당연히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을텐데… 하면서
불행한 결말이 자꾸만 예상됐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들은 그 사회에서 정해준 기준에 따라서
연령대에 맞게 알아야 한다는 완전 ‘꼰대’ 같은, 보수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이가 아무리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알고 싶어하더라도
어른이 옆에서 세밀하게 지켜보고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정보를 접하고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어른의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 과연 그게 가능할까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 걸까, 아니면 타고나기를 예민하게 타고나는 것일까.
어떤 인간은 가지고 태어난 사랑의 총량이 너무 많아서 이 세상이 괴로운건 아닐까.
로빈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지나친 낙관으로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을 로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 하는 결론만 나왔다.

아래는 밑줄 그은 문장들 중 몇을 인용하며 후기를 마친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
세상이 근본적으로 엉망 진창이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크면 그만큼 고통도 깊을 수밖에 없었다. 로빈이 왜 다시 미끄러지는지 물을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머지 우리들이 왜 이토록 정신 나간 낙관론을 유지하는지를 물어야 했다.
우리는 사육장에는 보조금까지 주지만, 피드백 훈련은 금지된 곳에 살았다. 애초에 아이를 이 행성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이 밟으면 자국이 나기 마련이다. 마음이 여행하는 길도 그러하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