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을 읽었다.

지난 6월 짧게 방문했던 서울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만났던 오랜 인연을 만나고 왔다.

평일 저녁이라 피곤할 텐데도 흔쾌히 만나주었고,
언니가 박준 시인에 대해서 열의있게 얘기하는데
나는 그에 대해 아는게 너무 없어서,
우린 같은 직업을 가졌는데 나는 너무 문학에 너무 관심없는 삶을 살아가나 하는 마음에
좀 부끄럽기까지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18년부터 계속 비문학만 지도해왔다.
이제 돌아간다면 문학 수업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짧은 만남 후에 또 언젠가를 기약하며 헤어졌는데
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교보문고 이북으로 박준 시인의 산문집 ‘계절 산문’을 선물해주었다.
이렇게 이북을 선물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항상 내돈내산 하거나 밀리에서 읽었으니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하고
그걸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선물해줄 수 있는 관계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만남의 횟수와 우정의 깊이는 꼭 비례하는건 아니라고.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해도 이 우정을 계속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밤이었다.

계절산문 책검색 결과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싶은데 그러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그 마음은 조만간 아껴읽는 마음이 되었다.

한꺼번에 후루룩 읽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하나하나를 음미하려고 의식하면서 천천히 읽은 결과 길지 않은 책이었는데 거의 두달간 읽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니까요. – ‘선물’

먹는 일이 곧 사는 일 같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날에는 사는 일도 지겹고, 사는 일이 즐거울 때에는 먹는 일에도 흥미가 붙습니다. – ‘혼자 밥을 먹는 일’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거야”라고 다시 말하셨고요. … 별것 아닌 할머니의 이 말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너처럼 후회하고 괴로워하라고 있는게 아니야’라는 말로도 바뀌어 들렸으니까요. – ‘저녁과 저녁밥’

살아가면서 좋아지는 일들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대단하게 좋은 일이든, 아니면 오늘 늘어놓은 것처럼 사소하게 좋은 일이든 말입니다. 이렇듯 좋은 것들과 함께라면 저는 은근슬쩍 스스로를 좋아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 ‘칠월산문’

사랑은 이 세상에
나만큼 복잡한 사람이
그리고 나만큼 귀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 ‘정의’

하지만 어디에 살고 있느냐의 문제보다는 누구와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앞으로 어디가 되었든 좋은 이웃이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 ‘정원에게’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 ‘어떤 셈법’

선배의 조언은 결이 달랐습니다. 반발심이나 동요가 일어나는 법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선배의 조언 비법은 간단했습니다. 최대한 짧고 명확하게 하며 조언에 대한 상대의 답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간단한 원칙은 선배의 조언을 잔소리나 추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 ‘조언의 결’


책을 읽고 나니 그제야 시인이 더 궁금해져서
유퀴즈 출연 영상,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침착함
산문집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그의 모습이나 성품이
영상으로 읽으니 더 뚜렷해지는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두달에 걸쳐
서울, 싱가포르, 호치민에서 읽고 나니
읽었던 그 장소와 그때 내 마음에 따라 와 닿는 문장들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소설이나 비문학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고
시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만큼 시를 멀리하고 살았었는데
그의 시를 읽어봐야겠다고, 한국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