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을 읽으면서
쥘 베른이라는 작가에 대한 흥미가 생겼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그 책에서 소개한건 <해저 2만리> 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저 2만리>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독서모임에서 다른 멤버의 추천으로 읽게 된 프랑스 소설이다.
사실 어릴 때 뭔가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고, 대략의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정작 한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고전소설이었다.
그리고 역시 고전은 고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열린책들 버전의 이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열림원 버전의 번역을 추천한다는 추천 말씀에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서 읽었다.
전부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밑줄 그은 문장들이라도 좀 찾아보려고 비교해봤더니
정말 번역은 재창작의 영역인 것 같다. 많이 달랐다.

- 연재소설이 주는 재미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니까,
기술이 너무 많이 발전해버려서 지구가 더 작아졌으니까 느낌이 다르지만
연재 소설로 당시에 읽었던 독자들은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궁금해서 애타게 기다려가면서 읽었을 것 같다.
작가 본인이 잘 쓰는 부분은 특기를 발휘하고 분량을 엄청나게 할애했다.
클릭 하나로 해결하는 지금과는 다르게, 자료조사에 품이 많이 들었을텐데, 방대한 양의 자료수집을 하고
직접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생생하게 이국의 풍경들을 묘사했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건지 흥미가 없는 건지 로맨스의 영역은 철저히 생략해서
결말 부분에 갑자기 아우다 부인과 포그의 결혼이 좀 황당했지만 재미있었다.
- 문명과 야만
이분법적인 시각이 꽤 보인다.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고 프랑스 소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주인공이 영국 신사라는 설정, 드넓은 영국제국령을 활용한 추격 설정이 재미있다.
다만,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고 독자층을 노린 설정이기도 하겠지만
아시아 국가를 ‘터무니 없는 나라’라고 표현하거나
미국 원주민을 ‘벌레’ 보듯이 하는(물론 그들을 기차를 습격한 도적떼로 마주하긴 했지만)
그런 시선은 오늘날의 독자로서는 아쉽다.
- 계획형과 행동형
포그가 철저하게 계획적인 인물이라면,
파스파루투는 행동형의 인물이다.
그래서 서로 좋은 파트너(실제로는 주인과 하인 관계이지만)로 조화를 잘 이루는 것 같다는
다른 분의 평이 인상적이었다.
읽으면서는 ‘포그라는 사람은 얼마나 노잼 인간인지, 파스파루투의 매력만 돋보이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계획형과 행동형으로 대조되는, 또는 조화를 이루는 부분을 생각하니 더 재미가 있었다.
역시 혼자 읽는 책보다,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는 책이 더 풍성해진다.
- 돈의 힘, 돈을 가진 사람의 추진력
위기의 상황에서 돈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몇번이나 보여준다.
그리고 돈을 가진 사람이 추진력을 가지면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결말까지 쭉 끌고 가는 설정이다.
현대 인물로는 일론 머스크가 생각나기도 하고
이러다 포그의 돈이 바닥나지는 않을까, 어디까지 돈으로 해결이 되나 생각하며 읽게 된다.
- 결국 사람
결국 남는 건 사람이다.
이 일주가, 여행이 아니라 일주다.
어찌보면 내기 도박에 이기기 위한 이 일주가 무엇을 남겼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결말인데
내 답은 ‘결국 사람’ 이다.
포그에게는 아우다 부인과 파르파루투(더 이상 단순한 하인이 아니겠지?)라는 사람이 남았다.
왜 살아가는 건지 허무주의에 빠질 때마다, “결국 사람”을 생각한다.
- 밑줄 그은 문장
강한 전염성을 가진 그의 쾌활한 기분은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었다. 그는 과거의 문제와 위험을 모두 잊어버렸다.
요즘 감정, 기분관리에 대해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이 부분에 눈에 쏙 들어왔다.
만능열쇠, 파르파루투 그가 가진 쾌활함이 전염되어 독자까지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나는 남의 감정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
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전염시키는 사람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싱가포르 섬은 별로 크지도 않고 경치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산들이, 말하자면 섬에 개성을 주는 얼굴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그것은 이를테면 아름다운 도로가 교차하는 공원이었다. 아우다 부인과 필리어스 포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한 우아한 말들이 모는 멋진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을 태운 마차는 잎사귀가 무성한 야자나무와 꽃봉오리가 반쯤 벌어진 정향나무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곳에는 유럽의 시골 풍경을 이루는 가시 나무 산울타리 대신 후추나무 덤불이 있었다. 희한하게 생긴 잎사귀를 가진 커다란 선인장과 사고 야자가 이 열대지방의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니스를 바른 것처럼 번들거리는 잎사귀를 육두 구나무가 짙은 향기로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숲속에서는 떼지어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 밀림에는 호랑이도 살고 있을 것이다.
홍콩, 일본, 미국 등 지역묘사가 꽤 나오지만
스쳐가는 이곳,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묘사라서 더 꼼꼼히 읽어봤던 부분이다.
산이 없고, 잘 관리된 깨끗한 공원 같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그려진다.
그리고 여전히 원숭이들은 많이 남아있고 인간은 공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편안하게 읽었고,
독서모임 멤버들과의 대화로 완성한 고전소설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