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둘이 하는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에 대한 얘기를 실컷 나누고,
그냥 지나가듯이 ‘난 요즘 이 책 읽어~’ 하고 소개받은 책.
휴직한 이후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엄청 조금하지만) 왜 늘지 않는걸까?
싱가포르에 거주하다가 왔는데 영어를 여전히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텐데 두렵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영어 아닌 다른 외국어를 배운다는 제목에 끌려서 친구를 따라 읽기 시작했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 있었고 어려운 내용이 없기에 편안하게 술술 넘어간다.

일단 읽다보니 작가는 이미 프랑스로 떠나서 영화 공부를 한 용기와
평일에 직장에서 평범하게 일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자아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엄청나게 근면성실한 사람이어서
약간의, 아니 꽤나 많은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뭔가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그러면서도 또 별볼일 없는 초라한 나자신을 견디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노후의 집과 연금에 대해서는 그토록 고민하면서 정작 노후의 삶의 자세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됐을 때, 나도 그렇게 젊을 수 있을까? 불편한 다리로 혼자 모르는 나라를 몇 주씩 여행할 수 있을까? 그저 두렵기만 했던 60대 이후의 삶인데 이렇게도 설레고 뜨거울 수 있다니. 삶의 스펙트럼이 또 한 자락 열리는 기분이었다.
함께 이탈리어를 배우는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점을 쓴 부분인데,
재정 상태, 건강 상태에 대한 고민과 계획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 측면도 놓치지 말고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매일 회사와 집만 오가며 작은 일에 분노하고 걱정하는 게 습관이 되면 어느새 잊게 된다. 내 앞의 선택지는 길고 다양하게 이어질 수 있으며, 삶은 얼마든지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서른살 이후로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었던가. 제도권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나를 깎아 내는 기분이 든 적은 많았어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토록 자유롭게 밖으로 나와 살아 숨 쉬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좁아지지 말자, 한발 뒤에서 더 넓게, 더 멀리 보고 가자, 이 한주의 기분을 잊지 말자. 길을 걷는 내내 간절하게 되뇌었다.
작가가 일주일간의 홈스테이+어학연수를 마치며 하는 생각이다.
‘투박해지지말자’를 한때 닉네임으로 사용했었는데 잊고 있었다.
생일이 돌아오면 기쁘기 보다는
나이를 한살 먹었으니 무언가 나의 가능성이 더욱 적어졌다는 느낌에
즐겁지 않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마음먹기에 따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나의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조금 좋아하게 됐다. 스스로에게 없던 신뢰가 생겼고, 더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고 여기게 됐다.
외국어가 아니어도 뭔가를 하면서 자꾸만
내가 이걸 배워서 뭐하나, 자격증 또는 인증 점수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소용없는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때때로 의욕이 꺾일 때가 있다.
그런데 바로 저 문장,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조금 좋아하게 됐다’ 이 문장을 읽는데 머리를 쿵 맞은 것 같았다.
나를 좋아하는 일, 나에 대한 신뢰를 채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가.
한동안 에세이를 멀리했었는데
아, 이게 에세이를 읽는 맛이지를 생각했다.
읽게되어 감사한, 그런 책이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