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이정모 님의 매력에 빠졌다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 ‘과학이 가르쳐 준 것들’ 독서후기

교육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뼛속까지 ‘문과’ 인간으로서 살아왔다.

거기다가 7차교육과정 세대라서
대입 수능시험을 칠 때에도 과탐을 빼고 사탐만 4과목을 시험보고
덧붙이자면 수학에서 미적분도 배운 적 없는 정말 불균형의 극치, 최소 세대라고 생각해왔다.

어릴 때에는 자신이 없는 영역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치열한 상대평가인 대입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뭔가를 자꾸 선택하게 하고 ‘선택하지 않은 영역을 남겨두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하는 생각에
바로 윗 학년 선배들처럼 사과탐을 그냥 강제로 다 배우고, 다 시험쳤다면
조금 더 기억에 남고 삶에 도움이 됐을거라는 생각이 커졌다.

그래서 과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일부러라도 열심히 교양과학 서적도 찾아읽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영상들도 즐겨 보는 편이다.

요즘 가장 즐겁게 보는 건
유튜브 <보다> 채널과 EBS <취미는 과학>이다.

전달력 좋고 입담까지 좋은 전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보게 만들고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줘서 소중하다.
사실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버린다는 죄책감을 그나마 덜 들게 해줘서 만족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그 중 한분,
이정모 님 덕분에 웃은 일이 많아서 그분의 책을 찾아 읽었다.

<찬란한 멸종>도 재미있었지만 따로 리뷰를 남기지는 않았고,
이번에 읽은 <과학이 가르쳐 준 것들> 이 더 쉽고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태도와 유머감각이 잘 녹아들어 있어서 교양과학서적으로서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이정모, 과학이 가르쳐 준 것들 책검색 결과

행복은 우리가 사는 목적이잖아요. 행복이 뭘까요? ‘행복은 00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고, 또 춥고 배고프지 않고 건강해야겠지요. 이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야학 교사를 10년 가까이 했습니다. 이때 깨달은 게 있죠.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큰 계기가 됩니다.

북클럽 멤버들과 4월 책으로 <행복의 기원>을 10주년 개정판으로 다시 읽었는데
그 책과 이 책을 같이 읽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행복에 관한 생각 중에 ‘글읽기와 쓰기’ 부분에 눈길이 많이 갔다.

<헹복의 기원>을 읽으면서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보냈던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지금의 내 상황이
행복 측면에서 다소 불만족스럽게 느껴지고,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었는데
‘글읽기와 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라는 방향으로 생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늘 이책 저책을 동시에 읽기 때문에
하나의 책을 어떤 책과 같은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서도
눈길이 가고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다소 산만하고 정신없는 독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장점도 있다.

“아이들이 질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지요.”가 진짜 답입니다.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흥미를 느낍니다.

박물관을 열심히 다녀도 ‘우와~’하는 감탄에 그치는, ‘이거 진짜인가?’하는 단순한 질문만 해대는 어른으로서
뜨끔해지는 대답이었다.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만 남기지 말고,
더 알고 싶은 것, 내 질문들을 늘 생각해봐야하는데
어른도 아니 그렇게 습관들여온 ‘어른이라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상상은 인류의 영역을 넓히는 힘입니다. 영역 확장은 전선에서 일어납니다. 전선에 한참 못 미치는 곳에서 하는 생각은 상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잘해야 학습입니다. 반대로 현대 과학에 발을 딛지 않고 전선 너머에서 하는 생각은 막연한 공상일 뿐입니다. 상상이란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상을 하려면 과학의 최전선을 알아야 합니다.

상상, 창의력을 논할 때
막연한 공상과 상상을 구별하지 않고
오로지 ‘자유로움’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직업병일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꼰대’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내를 갖고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중요성, 그 필요성이 점점 간과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뭘 알아야 상상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릴라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까요? 2018년 10월 15일자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카리소케 연구센터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놀랍게도 짝짓기를 원하는 고릴라 수컷은 암컷이 데리고 있는 새끼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누구의 자손인지 모르는 새끼를 돌보고 먹이는 것이지요. 암컷들은 새끼를 잘 돌보는 수컷과 짝짓기를 합니다.

프란스 드 발의 <차이에 관한 생각>에서
보노보를 서술한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릴라 마저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숫자가 중요합니다. 맑은 하늘만 보고서 미세먼지 농도를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느낌만 믿지 말고 숫자로 확인합시다.

내가 정말 취약한 부분, 바로 ‘수치’다.
기억하려는 노력을 해도
접했을 때 어마어마하다는 그 느낌, 별거 아니라는 느낌만 남고
수치를 기억 못해서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답답한 경험이 많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말들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수치를 잘 확인해야 하는데
실상은 감정적인 호소에 잘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서 항상 경계한다.

청소년들에게도
그리고 나처럼 과학 ‘문외한’이라는 점이 늘 아쉬운 사람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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