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1월의 책으로 선정된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다.
사실 ‘겨우’ 읽었다.
독서모임의 순기능 중에서는
첫째, 혼자서라면 절대 읽을 일 없는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과
두번째, 중간에 포기할 책도 모임에서 낯부끄러운 순간을 줄이기 위해 꾸역꾸역 완독할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둘 모두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우선, 당연하게 이북도 있을 줄 알고 (최신간이 아니니까) 1월의 책으로 선정할 때 동의를 했는데,
찾아보니 그 어디에도 이북은 없었다.
이전에도 한번 철학책으로 하려다가 이북이 없어서, 나 때문에 책을 바꾼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했다.
한권만 구입해도 배송료를 지불하면 싱가포르까지 배송이야 해주겠지만 아까우니까.
다른 이것저것 물품들과 함께 동생 손을 거쳐서 내손에 들어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종이책을 읽는 기쁨을 누렸다.

좋아하는 문진과 인덱스, 책갈피, 독서링까지 책상 위에 함께 올려놓고 신나게 읽기 시작했다.
제목의 힘
사실 제목을 정말 잘 붙였다고 생각한다.
좀 나쁘게 말하면 ‘낚였다’고나 할까.
게으름의 힘이라는 표제글이 제일 재미있었고, 뒤로 갈수록 읽기가 힘든 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뽑아낸 것이
이 책에 대한 평가에, 그리고 판매량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책이 개정판 36쇄였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대신해서 ‘여가’라는 단어를 썼다면 지금만큼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표제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 전반적으로는 ‘여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에 의해 가능하다. 24쪽
여가 그리고 교육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휴직 생활을 즐기면서도 때때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하는 나의 의문이
사실은 ‘생산성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 시합을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적극적인 에너지들이 모조리 일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30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와 ‘건강한 도파민’이 많이 생각났다.
이 글들은 1930년대에 나온 글들인데,
현재 2025년의 나는 유튜브, 넷플릭스라는 수동적 즐거움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도파민에 흠뻑 젖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도파민일 수록 적극성이 요구되고
일하는 삶이라도 매일 나를 위한 적극적인 에너지를 남겨둬야 진정한 여가 시간을 누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배우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사랑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삶의 기쁨(joie de vivre)’의 하나였다.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 않는 독서를
쓸모, 더 노골적으로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는 배움을 왜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내려놓기 위해서
방송통신대 법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만족한다.
누군가는 돈과 시간을 낭비한 것이라고, ‘먹고 살만하니까 벌이는 쓸데 없는 짓’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제라도 로스쿨 시험 볼거냐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라도 따두라고 하는 조언들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수많은 공부 중에서 (예체능 활동 제외)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남은 휴직기간을 이용해서 또다른 분야 공부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석사 수준도 아니고 또 손쉽고 저렴한 방법을 택하겠지만 말이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된다. 51쪽
바로 이전 달 모임 책이 <코스모스>였기 때문에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창백한 푸른 점 하나, 지구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바람직한 것은 복종도 반항도 아니며, 선한 본성과 사람들 및 새로운 사상들에 대한 일반적인 호의이다. 127쪽
내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란 필요한 일을 기꺼이 공정하게 분담하고자 하는 마음, 모든 것을 고려하여 불화를 없애는 방법들에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128쪽
타인에 대한 배려는 대부분의 아이들의 경우 저절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권위를 발휘하지 않고는 가르치기 힘든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성인들이 포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일 것이다. 129쪽
지금은 잠시 벗어나 있지만,
다시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아동학대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 없이는 권위를 발휘할 수 없겠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이성이라고 할 때, 실제 의미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힘보다는 설득에 의존하는 것. 둘째, 논쟁을 수단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것. 물론 이때 그 수단을 쓰는 사람은 그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믿는다. 셋째, 소신을 형성함에 있어 가능한한 관찰과 귀납을 많이 쓰고 직관은 적게 쓰는 것이다. 139쪽
한국을 떠나 있으니 애국자가 되는 것인지,
뉴스를 더 열심히 챙겨보며 어떻게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성과 감성이라는 말은 정말 많이 쓰지만,
그래서 ‘이성적이다’라는 게 무엇이냐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는 부분이었다.
어느 행위에 포함된 예견의 정도는 다음 세 가지 요소로 측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의 고통, 미래의 쾌락, 그 둘 사이 시간의 길이. 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예견은 현재의 고통을 미래의 쾌락으로 나눈 다음 거기에다 그 둘 사이의 시간을 곱해서 얻어진다. 210쪽
현재를 즐겨야 하는지 미래를 위해 당장의 행복은 유예해야 하는지.
당연히 양극단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걸 아는데, 과연 정도는 무엇인지.
생애주기별로 다른 여가교육이 필요하다고,
사회 초년생과 중년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 다양한 대화들이 오갔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즐기려면, 잘해내려면 시간, 돈, 체력 이 3가지가 제일 중요한데
3가지를 다 갖춰지는 완벽한 순간은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동과 다르게 노인 복지에 대해서 박한 감정이 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마치며
거의 100세를 살았고,
철학, 문학, 수학 등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지성인 러셀이 전달하는 지혜.
바로바로 받아먹고 소화하기에는 사실 많이 어려웠다.
그래도 종이책으로 소장했으니 한 두번은 더 읽어볼 기회가 또 오겠지.
작년에 베스트셀러였던 <행복의 기원>을 뒤늦게 읽고 깨달은 바가 많았었는데
러셀의 저서 중 <행복의 정복>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 도서로 만난 것에 감사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