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동물원’을 읽었다.

즐겨보고 있는 민음사 유튜브에서도 상을 많이 받았다고 추천하는 정보를 접했었는데
막상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책에 있었다.

종이동물원 책소개 출처 교보문고

<밀리의 서재>에서 곧 내려가니까
얼른 읽어보라는 ‘이북카페’ 회원님들의 추천글 덕분에
김유태 ‘금서기행’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소개한 30 작품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이 생긴 작품이 바로
켄 리우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 켄 리우 소개 출처 교보문고

표제작은 ‘종이동물원’이지만
마지막에 실려있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이 읽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책의 수록 작품 해설 파트를 보면
동북아시아 4개국 가운데 이 작품을 완전한 형태로 출판한 나라는 타이완과 한국 뿐이며,
작가 스스로도 이 중편을 ‘스스로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고 한다.

읽으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으로 쓰인 에스에프 소설로
테드 창의 단편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는데
소설 말미에 실린 지은이의 말에 형식을 처음 떠올린 소설로 밝혀두어서
테드 창의 소설도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형식의 측면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이 얼마나 유용한지 영리하게 정말 잘 사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등장하는 각 인물(주체)들의 입장을 그리고 그 첨예한 차이들을 드러내는데 정말 효과적이다.
그리고 독자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해서 더 몰입할 수 있다.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느니 ‘고통이 뒤따랐다’느니 하는 식의 목적어 없는 자동사 구문 뒤에 숨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옮겨 적고 싶은 수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이 문장을 고른건,
거대 사건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요즘 유별나게 더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은 이 책임 회피 화법에 질린터라 더 기억해 두고 싶었다.
목적어도 숨기고 주체인 자신도 마치 객관적인 제3자인양 하는 회피 화법에 분노하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끼는데 내가 예민한걸까.

에번 웨이 박사의 말들이나, 그의 선택까지 더 자세히, 많이 옮겨 적고 싶지만 여기서 줄이면서
정말 정말 얼른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천생연분

이제는 너무 익숙한 소재와 결말이라서 뻔하면서도 재미가 있다.
발표 시점이 2012년이니까 그럴만도 하겠다 생각이 든다.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하면서
또 10년 후에는 인간와 AI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레귤러

여성 사립탐정의 사건 해결과정이나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느껴져서 흥미롭게 읽었다.
감정이란 무엇인지,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머릿속 한복판부터 손가락 끝까지 안도감이 퍼져 나간다. 통제되고 훈련된 정신이 선사하는 아늑하고 무덤덤한 평정심이. 통제당하는 삶은 곧 정상인(regular)의 삶이다.


영어 원서로 마음에 드는 책을 쉽게 읽을 만큼의 영어 실력은 못 가졌는데
해외에 나와서 살고 있다보니,
<밀리의 서재>와 이북리더기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종이책을 읽는 맛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지만
이북이라는 장점 덕분에
두께가 주는 압박감도 없이 멋모르고 시작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푹 빠져서 읽고 나중에 ‘북적북적’앱에 읽은 책으로 기록하는데 두께를 보고 놀랄 때도 있으니까.

북적북적 앱이 알려주는 2024년 9월 현재 독서기록

에스에프 소설의 상상력이 주는 재미와
현실과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작가 켄 리우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정말이지 강력추천하는 소설집 ‘종이동물원’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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