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를 읽었다.

즐겨보는 민음사 티비에서 헤세를 좋아하는 분의 추천에 이끌린 걸까.
아니면 독서모임에서 계속 추천 책으로 나왔지만 매달 선택되지 않아서 혼자 궁금해진걸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버전으로 읽을까 하다가
그냥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는 문예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밀리의 서재에 딱 12권만 서비스하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집앞 도서관에 가서 민음사 버전의 작품 해설도 찾아보고 했을텐데 그점은 아쉽다.
싱가포르에서 아이패드와 팔마로 하는 독서이기에 그냥 <밀리의 서재>에 있느냐 없느냐가 꽤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나중에 독서모임에서 ‘싯다르타’를 선정하는 달이 오면
아마도 민음사 버전의 이북을 사서 다시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

싯다르타, 문예출판사 책검색 결과

사실 ‘데미안’을 어릴 때 한번 성인이 되어서 한번 읽었는데도
왜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소설인건지, 헤세의 팬이 되기에 아직 나는 먼 것인가..
내가 모르는 무언가 강한 매력이 있는데 내가 못 느끼는걸까 하는 마음만 잔뜩 생겨났었다.

그래도 ‘싯다르타’는 ‘데미안’보다는 더 흥미진진하게 푹 빠져서 읽었다.
일단 분량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고
모를 수 없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물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술술 읽힌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불교에 가까운 무교의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이 많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싯다르타가 걸어가는 깨달음의 길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강물(자연)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는 부분 또한 그동안 한국 고전문학에서 다뤄온 ‘자연’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새롭거나 낯선 것이 아니어서 꽤나 자연스럽게 이해가 갔다.

“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식할 수 있습니다.”

싯다르타가 대체 당신은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질문 받았을 때 하는 말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하다니, 그리고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다니 하면서 읽었다.

“…내가 발견한 것을 말하는 걸세.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지혜의 힘을 입어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지혜를 써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지혜를 말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미 청년이었을 때부터 여러 차례 예감했던 사실이요, 나로 하여금 스승에게서 떠나게 만든 것이었네. …”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는 말은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참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던 말인데
싯다르타의 말로 만나다니.
반가우면서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싯다르타도 경험을 통해, 경험한 후에 온전히 자기 꺠달음을 얻는다.

카마라의 아들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들로 인해 기뻤지만 고통과 괴로움을 집착을 배우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바수데바가 주는, 강(자연)이 주는 깨달음이야말로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고정불변의 진리,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시 읽고,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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