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읽지 않았는데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그런 작품.
너무나 유명해서 줄거리는 다 알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고전.

친구와 둘이서 하는 북클럽에서 종종 고전에 도전해는데 이번 5월의 책으로 골라봤다.

고전은 괴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죄와 벌’ 이나 ‘데미안’ 보다는 훨씬 재미있겠지,
제목이 주는 심오한 느낌과는 다르게 오만이랑 편견이랑 사랑에 빠지는 그런… 연애스토리라는 유머러스한 후기도 봤었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제대로 한번 읽어보자고, 도전해보자 해서 시작했다.

알라딘에서 크레마 기기를 살 때 장기 대여로 받은 이북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도 있지만,
요즘 너무나 재미나게 애청하고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주는 ‘민음사’ 세계문학버전으로 읽었다.

오만과 편견 책검색 결과

두 책 모두에서 해설을 볼 수 있었고,
꽤나 두꺼운데 이북으로 읽어서 그 무게를 실감하지는 못했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 민음사 버전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 열린책들 버전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을 한번 비교해보고자 인용해봤다.

줄거리로만 따지자면,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지겹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이자
장편인 분량 때문에 전형적인 일일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한 느낌도 든다.
인물들의 성격적인 특징이나 그간의 모든 우여곡절들이
행복한 결혼으로 완성된다고 해야 할지, 끝나버린다고 해야 할지 하는 그런 전형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 신데랄라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읽어본다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몰입이 시작되자 아주 오래간만에 아이패드로 읽으면 눈이 좀 시린데도 불구하고 3시간 이상 붙들고 푹 빠져서 읽어버렸다.

고맙게도 민음사 책에서는 뒷부분에 꽤 정성을 들여서
작품 해설, 옮긴이의 말, 개정판의 의미, 작가 연보, 주석, 저자소개를 달아두고 있어서 먼저 찾아서 읽고 시작했다.

작가 제인 오스틴

1775년에 태어난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속 인물인 엘리자베스와 제인처럼
작가 본인 또한 언니와 자매애가 두터웠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엔딩을 제외한다면
작중 인물들하고 비슷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갔던 것 같다.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작가의 생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심심풀이로 소설 쓰기를 했고 운좋게 사랑 받은 것이 아니라
소설 쓰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썼고,
고쳐쓰고 출판해내고 결국 본인의 작품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겼구나 싶다.
언니와 주고 받은 편지를, 가족들이 사적인 내용은 지켜주고 싶다고 많이 태워버렸다고 하던데 그 점이 참 아쉽다.

한정 상속

한정 상속이라는 괴상한 법적 장치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 첫 단추일 것이다.
재산과 지위의 상속이 집안의 남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상속을 한정시키는 법정장치라는데
딸만 다섯을 둔 베넷 부인이 너무 심하게 분별력이 없어보여서
미친건 아닐까 싶을만큼 딸의 결혼에만 집착하는 것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장치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와는 다르게 조선 후기부터는 무조건 아들에게만 상속하고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여서라도 장자상속을 했으니까… 하면서 이해하려하다가도
재수없는 콜린스가 어릴 때부터 양자로 들어와서 이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베넷 씨가 죽으면 재산을 싹 차지한다는 점을 그 스스로도, 베넷 가의 가족들도 모두들 알고 서로를 대한다는 점이
베넷 씨만 죽으면 이라는 가정으로 자칫 스릴러로 흘러갈 것만 같은 긴장감도 초반엔 있었다.
나는 역시 스릴러물을 좋아하니까 결말을 몰랐다면, 혼자 몰입해서
진짜 아버지가 먼저 죽기라도 하면 혹은 누가 죽인다면 이 집안 여자들은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읽었을 것 같다.

베넷 가의 딸들 중 하나와 자신이 결혼한다는 것을 마치 시혜를 베풀어준다는 식으로 여기고
잠깐 사이에 제인에서 엘리자베스로 마음을 바꾸고
또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 당하자
고작 며칠만에 다른 아가씨에게 청혼하는 콜린스를 보면서
또 친구가 청혼을 거절한 남자에게 불과 며칠만에 청혼을 받고 샬럿이 수락하는 부분이
정말 인상깊었다.

리디아와 위컴,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보여주는 각각의 사랑과 결혼 보다도
어찌보면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결혼이 철저한 손익계산 끝에 맺는 계약관계라는 부분을 잘 부각시켜줬다.

오만에서 사랑으로

엘리자베스의 시선에서 본 다아시이기에
도대체 어마어마한 재산과 지위 말고 무슨 매력이 있는걸까 하며 읽게 된다.

제인과 빙리의 결혼이 좌절되는 듯 보이고,
리디아가 위컴과 도망가는 사건으로 명예마저 땅에 떨어지는 등
엘리자베스의 상황이 점차 안좋아질 수록
다아시가 적극적으로 엘리자베스의 삶에 개입하고
그가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는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참 질릴만큼 많이 본 이야기요소이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맞습니다. 허영은 두말할 것 없는 결점입니다. 그러나 오만은…… 진정으로 뛰어난 마음의 소유자가 잘 통제하기만 하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만과 자긍심은 한끗차이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다아시의 말이었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다아시의 그간의 행동들,
예를 들면 말수가 적고 아무에게나 쉽게 친밀감을 표현하지 않는 점들이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긍심 높은 사람의 지위에 걸맞는 행동들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도 예전 같으면 꿈에도 해 보지 못하던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의 태도를 보고, 그녀는 여자도 남편에게 얼마든지 무람없이 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 살 이상이나 손위인 오라비가 누이동생에게 항시 그런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결말부분에 조지애나를 통해서 작가 제인 오스틴이 살짝 숨겨놓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 본인도 청혼 직전까지 갔던 관계가 배경의 차이로 무산된 일,
청혼을 수락했다가 하루만에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는데 본인의 고통까지 소설의 소재로 녹여냈겠구나 생각된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원형을 읽어봤다는 점에서도
이제는 너무 뻔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고 여겨지지만 이 정도 분량을 몰입감 있게 끌고 나가는 매력의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소설 읽기의 경험을 준다.
이래서 사랑받는 고전이구나를 깨닫게 하는 독서였다.

덧,
요즘 푹 빠져 있는 유튜브 <민음사티비>에서 올려준 제인오스틴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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