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살러’ 온지 어느덧 딱 일주일이 흘렀다.
어제 일요일에 친구와 둘이 페이스타임을 통해서 온라인 북클럽을 진행했다.
블로그의 ‘읽은 것들’ 카테고리가 24년은 텅 비어있음을 깨닫고,
짧게나마 남겨본다.
친구와 둘이하는 북클럽.
서로의 추천책을 고려해서 그 달의 책을 정해 읽고 만나서,
한줄평을 시작으로 인상 깊은 문장들을 서로 공유하고 책을 소재로 일상을 나누는 소박한 북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쭉 내려보기)
2020년 3월에 <관계의 과학>을 시작으로
둘이서 하는 북클럽이지만 이름도 붙이고 재미있게 꾸준히 해왔다.
2023년 2월의 책으로는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23년의 책으로 골랐다는 소식도 접하고,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던 저자가 극복해내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나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른 책이었다.

작가는 친절하게 본인의 홈페이지https://www.patrickbringley.com/art 에
본문에서 언급한 작품들에 대한 메트 온라인 링크를 걸어주어서 작품을 확인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링크를 즐겨찾기 해두고 아이패드로 밀리의서재와 사파리를 오가면서 책을 읽었다.
꽤 고해상도로 작품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실물을 직접 가서 보면 그 사이즈에 압도당하는 느낌에 푹 빠질 수 있겠지만.
2019년 여름에 메트를 다녀왔지만 전형적인 ‘바쁜 관광객’ 모드로 둘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시 메트를 방문할 날을 꿈꾸면서 책을 읽게 된다.
작품을 확인하면서 읽다보니 시간도 꽤 걸리고,
굳이 아껴가면서 일부러 느리게 읽은건 아니었는데
2월 한달이 바쁘기도 해서 정말 오래두고 천천히 읽은 책이 됐다.
책에 실린 다양한 찬사들 중에서
“이것은 아름다운 위로다.”_<가디언>
가장 공감되는 찬사였다.
책 전체가 ‘애도’라는 평가도 적절했다고 본다.
10년의 세월을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읽기 시작했으면서도
책장을 덮고 나서 ’10년이나!’ 하면서 또 놀라기도 했다.
뒷부분으로 갈 수록 안온한 느낌, 평화로운 느낌에 빠지기 때문에
작가가 겪은 슬픔과 서서히 잊히고 예술의 의미, 아름다움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요즘 내 관심사는 영어 능력 향상인데,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노력은 하기 싫고 그냥 어느날 자고 일어났으면 영어 실력이 확 늘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다.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 이라는 구절이 확 와닿았다.
강요받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도 포인트고,
무엇이든 ‘부지런함’이 따르지 않으면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요점’ 과 ‘예술’이 얼마나 대척점에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뭐든지 요약된 것을 편하게 접하고 싶고,
‘그래서 요점이 뭐냐’, ‘~의 요점’이라는 말이 넘실대는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생각하게 한다.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리듬을 상실하고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2022년 가을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구멍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내가 했던 노력들도,
주위 사람들이 내게 보내 준 격려의 리듬도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모든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인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관한 나의 이해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행위’ 와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
그저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사실’만 중요했고,
‘~에 왔으니 ~는 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깐 마주했었던
수많은 예술품들이 스쳐가는 느낌이다.
혼자서 미술관, 박물관에 가는 일을 개의치 말아야겠다.
주로 여행지에서 코스 중에 하나로 가다보니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힘도 있었을테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작가가 느끼는 지점들도 후반부에서 읽힌다.
사실 나는 이 책에 대한 한줄평을 하면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감도 줬다’라고 평을 했는데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이렇게 블로그에 몇 자 적어보는 과정을 거치니
실망감보다는 그래도 거대한 슬픔에 대한 위로로서 예술을 생각해보게 하고,
저자의 극복 과정이 독자에게 주는 격려로서 의미가 그래도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