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었다(문학동네 북클럽 송년키트 후기)

2023년에는 휴식에 집중한 해였기 때문에 그동안 안 해본, 못 해본 일들을 꽤나 했다.
그 중 하나인 ‘문학동네 북클럽(가입 및 웰컴키트 후기)‘.

트렌드를 잘 아는, 마케터 친구를 두어서 알게 됐고 함께 가입했다.
독파 프로그램으로 신형철 작가의 줌토크도 참여해보고,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혜택 좀 누리고(소소한 선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볼 때도 할인 혜택을 누렸다.

매달 이달책을 읽거나 독파 프로그램에 더 열심히 참여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북클럽 구성이었다.

송년키트에서 다시 정리해준 내용

마지막으로 집으로 배송된 북클럽 송년키트를 받아보았다.

상자를 열 때는 늘 설렌다
송년키트 구성

달력이랑 커피랑, 문장집 등 선물들 사이로 가장 중요한 책이 보였다.

문학동네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서지정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리커버 특별판 (교보문고 책소개 페이지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779695) 이었다.
1월 초에는 송년키트에 포함된 책을 읽고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송년키트에 과연 어떤 책이 올지 궁금해하고 있던 터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5년 근대문학의 시작. 한국 문인들에게 끼치 영향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

책을 읽고 나서 열심히 정보를 검색해보니 일본문학을 논할 때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름 문학 전공, 국어국문학 전공자인데 그의 책은 처음 읽어보다니.

그렇지만 혹평할 수밖에 없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여기부터는 소설 결말 스포가 된다.

첫번째, 특히 1,2부를 읽으면서 했던 ‘이렇게까지 늘어지게 쓸 일인가?’하는 생각은 연재소설이라는 점에서 해결됐다.
마치 대학시절에 ‘무정’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후로 연재 소설이라는 정보를 먼저 접하면 색안경일지 모르지만 ‘늘어진’ 느낌부터 드니까.

1부 선생님과 나,
2부 부모님과 나,
3부 선생님과 유서 로 이어지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점점 더 몰입하게 하는 힘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결말에 이르러서 내가 이걸 읽으려고 여기까지 읽어왔나 하는 허무함에 빠지고 말았다.
새벽까지 침대에 가지고 들어와서 읽다가 (모처럼 종이책으로 한장 한장 넘기는 맛을 느끼며 읽으니 좋긴 했다),
결말에 이르러서 “모야 이게 진짜 끝이야?’를 나도 모르게 내뱉을 만큼 결말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받은 편지에서 선생님의 자살이 언급되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린 ‘나’도 충격,
친구 K가 자살해버린 것도 충격,
그로 인해 선생님이 남은 대하는 태도도 충격적이다.

상속재산으로 인해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까,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되니까 생각이 많아진 20대의 마음을
유약한 정신상태를 끝까지 고수하다가 스스로 끝마쳐버리는 생이 근대 일본인의 마음이라는 걸까.

“…도저히 안 되겠군. 그 문제는 그만 접읍시다. 어쨌거나 사랑은 죄악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신성한 거지요.”

1부에서 선생님의 말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왜 사랑이 죄악일까, 죄악인데 신성하다니 무슨 소리지 했는데,
결말까지 다 읽고 나면
사랑에 눈이 멀어 저지른 젊은 시절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사랑은 죄악’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해버린 것 같고,
죄악이지만 신성하다니, 그 모순적인 말 속에 묘하게 그로 인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욕구도 느껴져서
결말까지 다 읽고 다시 돌아와서 이 대화 부분을 한번 더 읽어보게 됐다.

나는 인간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경박성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데,
‘누가 먼저 죽을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 후에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지하는 물음을 통해서
헛된 것, 경박성이 이끌어져 나온다는 게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이 소설을 더 어릴 때 읽었더라면 (‘나’와 비슷한 나이대인 20대 초반에?),
아니면 더 나이들어서 읽는다면 감상이 달라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3부인 선생님과 유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몰입해서 읽기는 했다.
K를 향한 선생님의 마음이 순수하게 느껴지긴 했다.
위태로워 보이는 친구를 생각해서 억지로 본인 가까이에 두려는 것,
본인에게 좋았던 대로 친구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하에 하숙집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한 것은
20대 초반의 우정, 친구관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지나친 오지랖’이 결국 K를 변화시켰고 그를 비극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은 결말에 가서야 한 거니까.

나는 오직 K가 삶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나의 득실과 충돌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요컨대 내가 던진 말은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여러가지 의도적 행동들을 해왔지만 친구가 변화해가고,
나의 득실과 충돌하는 게 두렵다는 솔직한 마음이 잘 표현된 구절이었다.
게다가 그 득실이 20대의 사랑이라니.

‘나는 계략으로 이기긴 했어도 인간적으로는 졌다’라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습니다. 그때 필시 K가 나를 경멸했을 거라는 생각에 혼자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K에게 가서 체면을 구기는 일은 자존심상 큰 고통이었습니다.

세상 사람은 어떻든지 간에 나 하나만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이란 믿음을 어딘가에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K의 일로 그 믿음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자신도 작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어질어질해졌습니다. 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자신에게도 정나미가 떨어져 활동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제목을 ‘마음’으로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반부 내내 ‘선생님’의 속마음은 대체 뭘까, 왜 저러고 사는 것인지 내내 궁금하게만 할까 하다가
3부에서 엄청난 분량으로 한꺼번에 그 이유를, 선생님의 마음을 제시해주다니.

1914년에 연재를 시작한 ‘마음’

메이지 일왕을 따라 순사하는 인물들도,
동경이 아닌 지방에 사는 인물들 혹은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들과 ‘나’나 ‘선생님’ 같은 지식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이분법적인 구도,
그리고 여성에 대한, 마치 다른 종을 보는 듯한 시각,
특히 자살이라는 끝맺음 등 여러모로 현대의 내 시각에서는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안드는 요소들이 참 많은 소설이었다.

1914년에 신문 연재를 통해 이 소설을 접했을 일본 대중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
소설의 당대성, 당대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해놓은 글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제목만 많이 들어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2023년의 마지막 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추는 아닌… ‘마음’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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