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책, 제목만 들어본 책으로 남을 뻔 했는데 8월 독서모임 책으로 지정되어 꾸역꾸역 읽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3부에서 좀 힘들었고
1부와 4부가 정말 재미있어서 구성이 딱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도 ‘영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망설이면서도 결국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읽고 나니 인간이라는 것이 뭘까, 뇌일까, 기억일까하는 문제가 남고
‘영혼이 몸에 갇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다.
보통이라는 기준, 평범함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몸을 가진(뇌를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갇혀있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지만
책에 소개된 수많은 사례들은 ‘몸에 갇힌 존재’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기억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내가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기억상실뿐이다. 그것만이 내 삶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 루이스 부뉴엘 – ‘길 잃은 뱃사람’ 챕터에서 인용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기억을 만들어나가고,
또 나이를 먹고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기억력은 아주아주 비상한 채로 다른 신체 기관의 문제로 죽음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뇌가 곧 인간이 핵심이라는 측면에서 기억의 문제로 인간의 삶과 생명의 순환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신경심리학은 이런 것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습니다. – 위와 같은 챕터
물론 인간을 신경심리학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야기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필요하다면 되살려서라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즉 지금까지의 이야기인 내면의 드라마를 재수집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 편의 이야기 즉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 ‘정체성의 문제’ 챕터에서
어린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듣고 싶어한다. 아직 일반적인 개념이나 범례를 이해하는 힘이 없는 동안에도 이야기의 형태로 나타난 복잡한 내용은 잘 이해한다.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야기적인’ 혹은 ‘상징적인’ 힘이다. 상징이나 이야기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실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사고 따위가 아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렵부터 ‘이야기적인’ 힘은 위력을 발휘한다. – ‘시인 리베카’ 챕터에서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작가는 “이 책은 그토록 뿌리깊은 ‘이야기’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말했고 여러번 ‘이야기’에 주목하게 한다.
정체성 또한 마찬가지로 ‘연속적인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고,
개념이나 범례보다도 이야기가 선행하고 정신적으로 중요하다는 강조 또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표준과 결손, 그리고 과잉
보통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
큰 사고나 질병 없이 오늘도 정상 범주의 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사례로 소개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내게 위협이 되는 존재로 불쑥 마주할까봐 두렵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했었는데
작가의 시선에 놀라게 된다.
생존의 영역에서 기능적 보살핌의 문제를 떠맡지 않고
위협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하게 환자를 관찰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환자들의 결손 뒤에 숨겨진 다른 특별함,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이 된다.
특별한 재능을 가졌지만 결손과 과잉의 모습만 부각될 뿐
일생에 거쳐 표현해낼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스러져간 환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그리고 주위에 있을까.
인간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에 감탄하며,
왜 이 책이 계속해서 오래 읽히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