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에 관한 생각-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를 읽었다.
‘프란스 드 발’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의 주인공 최재천 교수님,
그리고 문재인 전 대통령님의 추천 책이라는 얘기에 관심이 갔다.
종이책으로 읽게 되었는데 책두께도 꽤나 두꺼워서 가지고 다니거나 단숨에 읽지는 못했고,
1달에 한번씩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반씩 나누어 두달에 걸쳐 읽었다.
밑줄 긋고 옮겨 적은 구절이 너무나 많지만 몇가지만 소개해 본다.
.. 영국 생물인류학자 로버트 마틴이 그것을 표현한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는 양성 사이의 차이는 대부분 쌍봉 분포를 보이는 반면, 젠더 사이의 차이는 스펙트럼 전체에 걸쳐 분포한다고 썼다. 87ㅉ
젠더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그렇다면 칼로 무자르듯이 구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명확한 구별이 필요한 영역이나 공간분리를 할 때는 젠더가 아니라 섹스, 생물학적인 성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
사회성이 매우 높은 종으로서 살아온 긴 진화 과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동료 인간을 보살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할 때 도움을 제공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많은 동물도 무리 생활을 하는데, 상부상조를 수반한 무리 생활이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 막대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141ㅉ
점점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의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타인에 대한 보살핌, 상부상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 많았고
작가의 긍정적인 세계관,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만약 탐험가들이 보노보를 먼저 만났더라면, 보노보가 우리의 1차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젠더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얼마나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을지 생각해보라! 180ㅉ
책을 읽으면서 보노보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졌는데,
인용한 말처럼 우리가 침팬지나 고릴라가 아닌 보노보를 먼저 만나고, 보노보 사회를 먼저 들여다보았다면
젠더에 관한 생각이 얼마나 생각이 달라졌을까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보노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말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은 무리생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윈은 암컷에 관한 그 시대의 어리석은 견해(특히 지적 능력에 관해)를 공유했을 수도 있지만, 진화에서 암컷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는 측면에서는 크게 앞서 있었다. 그는 암컷의 행위 주체성을 최초로 강조한 생물학자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암컷을 수컷의 생식을 위한 용기로 간주한 반면, 다윈은 성 선택 이론을 개발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자연의 화려한 색과 듣기 좋은 소리는 바로 수컷의 행동과 장식과 무기에 대한 암컷의 선호 때문에 생겨났다. 최고의 자질을 갖춘 수컷과 짝짓기를 함으로써 암컷은 진화를 조종한다. 238ㅉ
과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기적 유전자> 이후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과학고전서 중에 다윈만큼은
얼른 제대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종은 남성의 관여가 큰 특징인 가족 제도를 진화시켰다. 식량 공급과 보호, 양육 측면에서 이런 가족 제도가 주는 이점은 우리 종이 거둔 성공 이야기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점을 얻는 대신에 여성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강간을 포함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동거는 여성을 잠재적 위험에 처하게 하는 상황을 만든다. 289ㅉ
폭력을 다룬 제 8장도 역시 흥미로웠다.
신체적으로 물리적 힘의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 종만의 문제가 아닌데 …
각종 폭행 뉴스를 볼 때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어느 정도 그 해답이 되는 구절이었다.
사람의 뇌는 매우 유연한데, 이 특성을 신경 가소성 neurolasticity이라 부른다. 뇌와 행동 사이의 연결은 쌍방향 도로와 같다. 뇌는 우리를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황과 행동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배선을 수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는 공간 기억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해마가 커지고, 제2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회백질이 더 많이 생긴다. 뇌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 수정된다. 419ㅉ
양육에 관한 장에서 알게된 ‘신경 가소성’ 개념이 흥미로웠다.
양육 측면, 아니면 다른 생활 습관 측면에서 이 개념을 다룬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또 한편으로는 ‘타고난 뇌’를 탓할 수 없고
지금까지의 ‘내 삶이 만든 현재 상태의 나의 뇌’는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했다.
마음과 뇌와 몸은 하나다. 비물질적인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르투갈 출신의 미국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는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라고 썼다. “마음은 몸에 의해 매우 면밀하게 형성되고, 몸을 위해 일하도록 정해져 있어, 몸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마음만이 생겨날 수 있다.”
학부에서 들었던 수많은 수업중에 기억에 남는,
황금중 교수님의 ‘마음교육론’ 수업이 있다.
늘상 마음과 몸은 하나라고 ‘뫔’이라는 말을 쓰고 싶으시다고 하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10년도 더 지난 순간인데 그 수업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이 책을 읽던 중에 딱 맞는 구절을 만난 느낌이었다.
분량이 꽤 길어서 쉽게 권하기는 힘든 책이지만,
주위의 사람들에게 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