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 힘들 때,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고통을 마주했을 때,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검색해봤었다.
인생책이라고 추천하는 글들이 눈에 들어와서
상실감과 충격에 거의 미쳐 가고 있던 그때의 나는
뭐라도 붙잡고 싶으니까 덜컥 읽기 시작했다.
종이책으로 읽었다면 꽤 두꺼워서 시작을 망설였을텐데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아이패드와 휴대폰으로 틈틈이 읽어서 처음엔 그 두께를 모르고 막연하게 시작했었다.

에크하르트 톨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전작을 읽어 본 경험도 없었다.
다만 번역 작업을 한 류시화 시인에 대해서는 그래도 들어본 바가 있어서
그래도 ‘믿고(?)’ 읽기 시작했다.
오직 현존
이 책을 읽는 한 달여간 내내 위로 받는 느낌도 들고
에고며 의식이며 혼란스러운 기분도 들고
도무지 빠르게 읽어내려가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딱 저 두 단어다.
오직 현존.
내 말로 정리하다보면 너무 단편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저자의 뜻과 달라질 것 같아서
책의 내용에 대해 뭘 더 적기가 망설여진다.
오로지 지금 여기, 존재만을 생각하자.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고
자칫 이기심으로 보이는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남은 건 정말 저 두 단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좀 더 찾아보게 됐는데
말장난을 길게 써놨다느니 하는 비판적인 평도 봤다.
신앙심으로 붙들고 읽어낼 종교적인 서적도 아니고,
집중하기 힘든 책인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에고를 알아차리라’ 그것만 기억해도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달라질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들
비극적인 상실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것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항복한다. 억울해하거나 깊은 원한을 품는 사람도 있으며, 자비로워지고 지혜로워지고 사랑이 더 커지는 사람도 있다. 항복은 있는 그대로를 내적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삶을 향해 자신을 여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 사이의 연결을 보아야 한다. 생각과 감정이 되는 대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알아차림이 되어야 한다.
삶의 완성은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human과 존재being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햄릿’의 대사)이다.
고통체를 느낄 때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실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만드는 것, 에고는 그것을 무척 좋아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이다. 당신 삶의 모든 것이 이 끝없는 ‘지금’에서 펼쳐지고 있다.
생각과 알아차림의 분리, 그것이 당신의 주된 목적의 핵심이며, 그것은 시간의 무효화를 통해 일어납니다.
깨어 있는 행동의 세 가지 방식은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각각은 의식의 특정한 진동 주파수를 대표한다. 가장 단순한 일부터 매우 복잡한 일까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셋 중 하나가 작동하도록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의 어느 상태에도 있지 않다면, 자세히 살펴보면 당신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