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둘이 하는 북클럽 9월의 책.
어디서 들어봤더라… 했더니
인스타 팔로우만 하고 정말 라이브 방송은 한번도 본 적 없는
<김영하북클럽>에서 선정했던 책이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읽는 소설이겠구나 하면서
도서관에 대출 예약을 걸어뒀는데
북클럽 날짜가 다가와도 아무도 반납을 안해서…
오랜만에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소설 리뷰와는 좀 관련 없는 뜬금없는 얘기이지만,,,
밀리의 서재, 예스24북클럽, 윌라 등 각종 구독 서비스들이 넘실대는 이 시기에
아무리 적립금 이벤트를 열심히 참여해도
전자책 구매 가격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종이책을 더 이상 서재에 정리하기도 힘들고
이사를 할 때마다 가장 큰 애물단지가 되는 것 같아서 더이상 구매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유난히 종이책은 가격에 불만족스럽다.
누구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줄 수도 없어서 대부분 한번 읽고 마는데
실물이 없으니 만드는 비용도 종이책에 비해 훨씬 적을 텐데
좀 더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주로 밀리의 서재로 잘 읽다가 오랜만에 전자책을 구매했는데
이 책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러면 점점 더 전자책 구매는 안하게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 본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소설을 읽으면서는 찾아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저자가 속한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유튜브로 틀어놓고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읽으면서 해소되지 않았던 궁금증.
저자 ‘미셸 정미 자우너’는 한국계이고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등을 소설(자전적 소설)에 듬뿍 담아놓았는데
왜 하필 밴드명칭이 일본조식일까.
소설을 다 읽고 밴드명으로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그냥 말그대로 일본식 아침상을 떠올리고 지었다고 한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그다지 생각이 없었나보다.. 하고 다소 싱겁게 궁금증이 해소됐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상실과 애도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인것 같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 생각만 해도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은
어머니와의 사별 상황을 다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독자가 과연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엄청난 속도로 읽어내려가면서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모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다가,
내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면서 멀어졌다가,
이제 막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에 고통스러운 상실의 과정을 겪다니.
자기가 그러듯 항상 나만의 10퍼센트를 따로 남겨두라고 평생을 내게 가르쳐온 엄마지만, 그게 나한테까지 따로 남겨둔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으리라고는 그때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의 10퍼센트는, 뒷부분에 엄마가 떠난 후에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 이모가 함께 이리저리 탐색해보면 나머지 10퍼센트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다시 언급된다.
엄마는 본인도 그렇고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나만의 10퍼센트’를 간직하라고,
그게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내겐 그게 어떤 부분일까
앞으로 내 삶이 변화해나가더라도 내게 변하지 않는 10퍼센트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걸 신어보는데 웬일인지 가죽이 이미 부드럽게 길들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걸 일주일 동안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는 거다. 엄마는 양말을 두 겹 신은 발로 그걸 신고 매일 한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뻣뻣한 신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놓고, 자기 발바닥으로 평평한 밑창까지 모양을 잡아놓았다. 행여 내가 처음 그걸 신을 때 불편할까봐 말이다.
딸이 새 가죽 부츠를 신고 혹여나 발이 아플까봐, 엄마가 미리 길들여놓은 부츠.
굉장히 초반이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냥 흘렀다.
성인이 되어도 항상 부모눈엔 아기니까
그저 아프지 않고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잘 표현된 에피소트였다.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예술가로서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이야기에서
엄마의 예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내 삶은 과연 뭘 남기는가,
위대한 작품이나 오래 기억될 만한 사건에 기여하지 않는 그런 삶.
꼭 자녀가 아니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남기는 사랑이 바로 그 사람의 예술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유전적 형질이나 생활 습관을 전수한 그 사람의 핵심 조각인 자녀가 꼭 아니더라도.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요리가 치유법이 될 수 있다니!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들, 한식 조리법을 유튜브를 통해 익히고 시도하고
먹는 시간들을 통해 상실감을 치유할 수 있다니.
문득 내가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했지 이 나이가 되도록 (작중 ‘나’의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나 많이 어렸다)
제대로 배워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야 가까이 살고 언제든 원할 때 얼굴 보고 얘기하고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지만
과연 이 행복한 시간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내가 얼마나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까를 생각하니 울컥해졌다.
모녀 사이 만큼 애틋하고, 할말이 많은 그런 관계가 더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풍성한 소재로 가장 공감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능할 테다.
작중 ‘나’와 엄마,
읽는 나와 엄마를 생각하면서 훅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