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이후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도 매력을 느꼈다.
신간이 출시됐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고 밀리에 검색을 해봤는데
반갑게도 있었고 이틀 만에 후루룩 빠져 읽은 소설이다.

오래전 영화 <A.I.>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철이가 겪는 일들, 그리고 특히 선이와 달마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결말이 과연 어떻게 맺어질까를 생각하면서 엄청나게 몰입해서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하루는 내가 말했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그는 연구소의 아이들 중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없다고, 어딘가 변명처럼 들리는 말을 했다. 학교는 20세기의 산물이며 21세기 초반에 그 유용성을 이미 상실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학교는 일종의 수용소였단다. 부모들이 직장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나라가 맡아주었던 거야. 피가 뜨거운 십대들을 모아놓았으니 늘 문제가 생겼지.”
‘학교’에 대해 말한 구절이 흥미로웠다.
일종의 수용소라니 정말 맞는 말 같다.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늘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이제 학교에서 잠자는 것 빼고 모든 걸 다 해주길 원하는, 또는 그래야 하는 걸로 밀어붙인다는 생각을 자주 하니까.
학생으로 학교에 머무르는 게 아닌 데도, 갇혔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사람이라서 더 와닿았나보다.
선이의 세계관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은 당연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에게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달마의 세계관에 공감하기는 어렵고… 이렇게 생각하는 존재들이 곧 등장할거라는 생각을 들어서 괴로울 뿐이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선 선이의 세계관, 가치관에 그나마 공감의 힘을 실어 읽게 된다.
“맞는 말씀입니다. 동감입니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달마는 벌떡 일어나 창고 안을 오갔다.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물론 사자도 살아 있는 영양의 목을 물어뜯고, 배부른 곰도 재미로 연어를 사냥해 눈알만 파먹고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로 번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 –
달마와 선이의 대화는 작가가 아래의 책에서 인용했다고 말미에 밝혀두었다.

나중에 이 책을 꼭 읽어봐야지 하고 하이라이트 하던 도중에 역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방통대 법학과 교수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이민열 교수님이라니.
소설로 쉽게 읽어서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 엄청나보이는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작품 그자체로만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김영하 작가는 오랜 딩크부부라는 사실도 떠오르고 그랬다.
아빠는 고개를 돌려 질문의 진짜 의도를 가늠하겠다는 듯 변호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신중하게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그게 만약 잘못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외동이면 외로우니까 하나를 더 낳아주자.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죠.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이나 집을 주니까 낳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기심이죠. 생각해보세요.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윤리를 전공한 철이의 아빠에게 변호사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휴머노이드를 만든 것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최근 내가 내린 엄청난 결정이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떠오르면서 더 이 소설에 몰입했는지도 모른다.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마땅히 윤리도 갖춰야 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 노력해야지.”
선이의 말에서 ‘마땅한 윤리를 갖춰야 한다’는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일도 아닌데, 심지어 인간의 일도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감탄만 하지 말고
눈감지 말아야겠다.
인스타그램으로 김영하북클럽을 운영하면서 라이브 방송도 진행했다는데
아쉽게도 챙겨보지 못했다.
친구와의 북클럽으로 수다를 나눠 보았지만,
그래도 흩어지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블로그에 남겨보는 독후기록.
재미와 사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강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