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여러모로 참 바쁘게 보낸 달이다.
한편으로는 출제자, 성적평가자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말시험을 준비하는 어리바리 첫학기 학생으로 살았다.
그래도 독서모임 지정도서는 열심히 완독했고
늦었지만 6월의 독서기록으로 남겨본다.
5명의 모임참여자들 중에 음악교육을 전공하신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이렇게 분명히 작게나마
‘신부’의 철학과 음악 이야기라고 적혀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철학자’의 음악 서재, 그 중에서도
가톨릭 신부님의 철학이 담긴 책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만약 알았다면 조금 색안경을 끼고 처음부터 경계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했거나,
심지어 안 읽었을 수도(?) 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잘 뽑아낸 것 같다.
밀리의 서재를 애용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없어서
알라딘 이북을 구매했고 이북으로 읽었다.
이 책은 ‘읽는’ 책이기도 하지만
소개된 음악들을 ‘들으면서’ 읽어야할 책이기도 했다.
5인이기에, 쭉 대면하지 못하고 ZOOM으로 지속하고 있는 독서모임.
6월 모임일이 6월 27일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책을 21일부터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앞서 읽은 분들이 톡방에 열심히 공유해주신 유튜브 링크를 편히 눌러가면서
말그대로 ‘들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함께 읽으면서 읽기의 경험, 듣기의 경험을 공유하니 역시 장점이 많았다.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어떤 클래식 입문 책에서는 아예 매 챕터마다 큐알코드를 넣어줘서
손쉽게 소개된 음악들을 들을 수 있게 해두어서 감탄했었는데
이 책은 고전음악만 소개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 것인지, 안한 것인지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책의 맨 끝에 소개된 음반들이 챕터별로 주르륵 정리되어 있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음악과 책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자랑하는 교양에 인격과 영혼이 담겨있기는 할까요? 하지만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고자 애쓰며,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책과 음악은 좋은 친구이고 교양은 든든한 밑천입니다.
들어가면서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을 강조하는 필자.
역시 그냥 ‘철학자’가 아니고 신부님이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가 짙어서 다소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신의 뜻’ 안에서의 사랑으로 한정짓지만 않는다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다.
인생을 C# minor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다감하게,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게, 친절하면서도 여백을 가지고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에 대해 너무 모르고 책을 읽었지만, 나중에 함께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서 추천해주신 분께서 C# minor (올림 다단조)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정확한 곡정보를 몰랐지만 듣고 나니 “아 이 곡이 이 곡이구나!” 하면서 익숙했던 곡들이 많았다.
그리고 인생의 ‘여백’을 갖는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살아있는 존재인 인간은 자연이 주는 생명력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가 버티기 힘들 만큼 소진되었다고 느낀다면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져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휴가가 사치가 아닌 것은 생명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본성에 따른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도심 속에서 즐기는 휴가도 떠오르고 있지만,
‘생명력’의 회복 측면에서는 역시 자연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게끔 조절해주는 시간,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명함’은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시야입니다. 실패와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덕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도덕성과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을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살고 싶어서 책도 읽고 모임도 하고 쾌락에만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과연 ‘현명함’이라는게 뭘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해준다.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와 함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돌봄에 힘쓰고 거기에서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는 하루하루가 쌓여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과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만 아니면 된다’, ‘나만 잘되면 그만’ 이라는 생각에 젖어 그게 똑똑한 거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사회분위기, 세태 속에 유의미한 조언이다.
현명함을 위하여 ‘때’가 중요한 것은, 현명함이 다름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잘 선택하고 결단하게 하는 덕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에서의 선택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위한 건 지금, 얼른, 당장 이면서.
남을 위하는 건 언젠가, 나중에,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때’와 ‘현명함’을 연관짓고 나니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뭘 더 기여할 수 있을까.
중용은 게으른 타협이나 생각과 열정이 없는 권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책임감을 가지고 심사숙고해 가장 적절한 길과 가능한 가장 좋은 방법을 끈기 있게 탐색하는 자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숙고하고 헤아리는 ‘성찰의 힘’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명함, 중용을 생각해 본다.
올해는 일기를 다시 꼼꼼하게 쓰면서 (해마다 쓰기는 썼다. 빈도의 문제였다.) 성찰하는 시간, 오롯이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느덧 상반기가 끝나버린 지금,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삶은 신비롭고, 인생은 의미로 충만합니다. 삶이 신비롭고 인생이 의미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자비로운 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가 읽기에는 다소 거부감이 드는 결론이다.
강요하는 듯한 말투는 아니지만 신부님의 책이라는 걸 잊다가도 문득문득 신 안으로 돌아오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포리아’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삶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자리한 편향과 맹목성을 끊임없이 주시합니다. 사려와 신중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진정 ‘아포리아’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순환적으로 보이는 인생의 큰 문제를 만날 때 피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감행합니다. 참된 철학자들은 ‘큰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누스바움은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는 ‘역량 접근’에 입각해서 풍요롭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 각자 애써야 하고 사회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기본 역량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생존, 신체 건강, 신체 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사회적 관계, 인간 외 종(동물, 식물, 자연세계)과의 관계, 놀이, 환경에 대한 권리 등 열 가지 정도로 노년의 ‘삶의 질’에 밀접한 관계를 맺는 역량을 목록화하고 개별 내용들을 오늘날의 직업과 복지와 관련된 정책들을 고려하면서 간략하지만 실질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성찰과 분별을 동반하는 숙고의 삶은 단순히 지성적인 차원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랑과 애착이라는 기본 욕구들이 적절하게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 애착의 감정이 성숙되고 인격과 통합되는 것이 바로 ‘우정’이라는 덕목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좋은 삶이었는가는 우리의 사랑이 결정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향한다는 것은 사랑을 부르는 것이고, 사랑에 의해 불리는 것입니다.
우정을 나누며, 좋은 삶을 살다 가고 싶다.
덴마크의 철학자이며 실존철학을 미리 예비했다고 평가받는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사랑의 일’에 있다는 것을 평생의 고뇌와 분투로 보여줬습니다
… 그가 자신의 모든 철학적, 종교적 씨름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사랑의 일’이라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키르케고르가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결실이며, 인생은 결국 ‘사랑의 일’이라는 가르침은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개된 음악을 한곡씩 찾아 들으면서 마치 노교수님의 강의를 듣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구절들은 잊어도 알게 된 음악들은 계속 찾아 듣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