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을 다룬 책을 읽고 싶던 차에
30년 간 매일 읽어온 작가가 쓴 책이라는 홍보 문구에 눈길이 갔다.

30년 넘게 매일 읽고 쓰면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저자로 홍보한 것,
제목을 ‘어른의 어휘력’으로 선정한 것.
모두 탁월한 것 같다.
이북으로 읽어서 또 책 두께를 살피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분량이 꽤 두툼하다.
300페이지가 넘고 흔한 삽화나 도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정말이지 활자로 가득찬 책이라서 사실 진입장벽이 될 수 있기도 할 것 같다.
나도 ‘나름대로’ 다독하는 사람이고, ‘국어’를 다루는 업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래도 나 정도는 ‘어른의 어휘력’을 좀 갖춘게 아닐까” 하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내공은 생각보다 깊었고 이내 겸손한 자세로 읽게 됐다.
대한민국의 어른은 대체로 수능을 치르고 나면 따로 어휘를 외운다든가, 어휘력을 키우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매일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모국어 아닌가. 그래서 일상에서 겪는 불편이 설마 모국어의 어휘력 부족 때문인 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꼰대’ 소리를 넘치게 가져다 붙이는 사회 분위기에서 지적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말과 글이 넘치도록 가까이에 있지만
나날이 ‘자극적인 말’, ‘날것의 표현’만 증가하고 있다고 느낀다.
보고 듣고, 읽고 말하는 능력이
모국어니까 쉽게 갖춰졌다고 믿고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과
자극적인 표현에 익숙해지고, 자극적인 말이 아니면 주목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때떄로 나를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더욱 생겼던 것 같다.
하이라이트 한 부분들을 쭉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초반에는 작가가 각주로 달아놓은 사전적인 뜻 부분을 참 많이도 줄을 그었다.
그만큼 내가 정확한 뜻을 모르고 있었던 어휘들, 몰라서 못 썼던 어휘들이 이 책에 많이 소개돼 있다.
울지 마라, 소리 내 말하라, 글을 쓰라.
그래야 내가 변할 수 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내 속을 풀어내는 것도 타인을 설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설령 말 때문에 사달 날 위험이 크다 해도 결국 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며 이런 상호작용은 주로 말을 통해 확립된다.”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세계 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We cannot think what we cannot think.)-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반대말은 주장이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주장만 늘어놓고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에는 아예 귀를 막아버리려고 하는 태도가,
양극단으로만 치부하는 태도가 사실 편하다.
자꾸 더 불편해져야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 하는 이가 최악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씨알머리가 없다. 도사리 같다. 말의 힘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으로 획득된다. 인격은 연출이 불가능하다.
책에 소개된 ‘몸값’이라는 어휘, ‘사람을 쓰다’는 표현.
들어도 이제 별 거북한 느낌이 없이 익숙해졌다는건
그만큼이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졌다는 것이겠지.
내가 학생일 때에는 교육을 총괄하는 행정부서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였다.
그때의 교육은 사람을 인적 자원으로 만드는 일이었을까.
요즘의 교육은 ‘만족도를 추구하는 친절서비스’ 제공 기능만 남아있다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인적자원’이라는 말에는 좀 불편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익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기업에서는 충분히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상품이나 가축 등에 쓸 어휘를 사람에게 쓰지 않는지, 사람이 하는 일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지, 늘 말본새를 점검해야 한다.
남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정서에 감염된 줄 모르고 자기 취향이나 정서, 선택, 가치관이라고 믿거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면서 남의 생각을 많이 안다고 착각하거나.
자기 관점 없이 남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따라가거나 자기 관점과 같은 것만 받아들여 자아만 비대하게 키운다면 위험하다. 자칫 망할 수 있다. 인간은 늘 그 두 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개인 기기로, 개인에 맞춰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일만 반복하면,
영상 뿐만 아니라 책이나 음악 등 큐레이팅해주는 대로, 추천해주는 대로 접하다 보면
내가 좋아한 것, 내 관점과 비슷한 것에만 푹 빠져들기 쉽다.
유발 하라리의 책에서 ‘나보다도 나를 더 잘아는 인공지능’ 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을 읽었었는데
이미 그렇게 되고 있고, 빠르게 그렇게 되고 있다.
뭐 때로는 아주 살짝 다른,
나랑 동질적인 집단의 사람들이 만족해했던 낯선 분야도 인공지능이 추천은 해주겠지만.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을 접할 기회나
우연히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망칠 구멍이 많은 비겁한 어휘를 고른다.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단적이고 편협한 어휘를 쥐려 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늘 도사리는 유혹이자 위험이다. 관점과 어휘력의 상관관계를 예민하게 감지해 피하지 않고 승부하면 차차 미립날 수 있다. 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관점과 어휘력을 가치관과 행동으로 유추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말과 글은 인품의 표현이니 당연한 이야기일까.
올바른 가치관,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 누구에게도 비판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도망칠 구멍이 많은 비겁한 선택을 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한 말은 어휘력에도 통한다. 사람들은 그 말을 알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하기 원하는지 모른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어휘력에도 한계가 없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믿는, 생의 유한성이 필연적으로 끌고 오는 허무함에 질식당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식이다.
서기와 앉기에 목적이 있다면 눕기에는 목적이 없다. 목적 없는 상태가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놀다’가 우리에게 주는 미덕이다.
…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착하지 못하고 친절하지 못한 건 다 누워 있는 시간을 포함해 노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다. 러셀의 주장대로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고 놀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다. 타인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고 천편일률적으로 빠르고 쉽고 편한 것만 추종하는 대신 각자에 맞는 속도를 찾아갈 것이다.
마지막 ‘놀토’가 기억난다.
그 다음해부터는 학교도 전면 주5일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토요일에 친한 동료 선생님과
“이제 토요일에 출근하는 건 이게 마지막이네”라고 웃었다.
내가 정년퇴임하기 전에 학교도 주4일제가 되는 날이 올까?
그럼 내 일터도, 학교라는 공간도 더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찰까?
다시 묻는다. 행복과 불행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가치에 –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그 가치 중 하나다. – 가격을 매기려는 속내는 그 가치를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치가 무엇이건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논거, 적확한 낱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표현이 아름다워야 하고 가슴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달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명백히 보여줄 것이다.
정치가가 아니어도, 카피라이터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선생님에게조차 단어로만 말하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샘~ 조퇴.”
버르장머리를 논하기 전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적확한 낱말로,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ebs수능특강> 독서 지문을 빠른 시간 내에 읽고 선택형 문제의 답을 고르는 훈련만 시키고 있는 매일매일이 괴로울 때가 많다.
눈앞에 상대를, 모니터 너머의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을
정중하게, 올바른 표현을 갖춰서 말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걸까.
조퇴증을 써주는 자판기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서비스 기계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니까
‘의사소통능력’, ‘표현능력’으로 생각하고 있다.
쓰다보니 또 하소연으로, 괴로움 토로로 흘러버렸지만
이 책 ‘어른의 어휘력’은 정말 널리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호흡에 쭈욱 따라가면서 읽지 않아도 좋으니
곁에 두고 한 챕터씩 조금씩 읽으면서 어휘력, 표현력에 대해 곱씹고 향상시킬 수 있는 책이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