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었다.

2016년에 함께 근무한 선생님들과 만든 독서모임이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임 멤버의 전공이 다양하다보니 서로 추천하는 책과 배움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와 감사한 일이다.

물리를 전공하신 선생님께서 4월의 책으로 추천하신 책.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완독했다.

마지막 챕터를 다 못 읽고 일요일 저녁 ZOOM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챕터에 이 책의 ‘정수’가 담겨 있다는 말씀에 포기의 위기를 넘기고 완독했다.

책검색 결과

우선 한줄평을 해보자면,
그동안 읽었던 책을 통틀어 1위까지는 아니어도,
‘실질적 문맹’이란 무엇인가를 참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글자를 읽고는 있지만, 열심히 한 쪽을 다 읽고 고개를 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람?’하는 생각에 여러번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각을 짚어나가면서 차분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겨우겨우 마칠 수 있었다.

이 책은 확실한 사실들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험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확신할 수 없음’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무지를 인정하고 현재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근거들을 짚어 나가면서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우주를 생각하게 한다.

토론을 통해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결정에 이를 수 있다, 토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밀레토스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정말이지 철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지리적, 역사적 연구의 요람인 도시입니다. … 밀레토스인들은 이성을 사용해서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는 이 책에 언급된 ‘밀레토스인들’ 보다 얼마만큼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현대적인 최신의 이론물리학을 다룰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한다.

왜 아인슈타인이었을까요?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지를 상상하는 독특한 능력을, 마음속에서 세계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재.
상대성이론.
몇마디 말로,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아인슈타인에 대해 ‘왜?’를 생각해보게 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상상할 줄 모르는 기성품 같은 사람만 찍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물론 훌륭한 조력자들, 다른 천재들과의 교류도 큰 몫을 했겠지만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곁에 있어도 그 상상력을 존중해주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저는 이 사례가 어떻게 훌륭한 과학과 위대한 시가 모두 통찰을 가져오고, 또 때로는 똑같은 통찰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가 과학과 시를 분리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를 근시안으로 만들어버려서 두 가지 모두가 드러내 보이는 세계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못 보게 하니까요.

명료한 수식으로 표현해내지는 못해도, 증명해내지 못해도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와 과학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를 생각했다.
아름다운 시구, 마음을 울리는 노랫말 정도로 생각했던 것들이
‘통한다’는 느낌을 줄 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분리해서 가르치고,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면 안 될 것 같다.
역시 물리와 철학은 통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강렬한 흥분을 주는 걸작들이 있습니다. … 그 훌륭함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긴 수습 기간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보상은 순수한 아름다움입니다. … 과학과 예술은 세계에 관해 새로운 무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며, 세계의 두터움과 깊음과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위대한 물리학과 위대한 음악은 마음에 직접 말을 하고 사물의 본성이 지닌 아름다움과 깊이와 단순성으로 우리의 눈을 엽니다.

나는 양자역학 덕분에 사물의 본성에 관한 세 가지 측면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입자성, 비결정성, 관계성입니다.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세계에서는 물리계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고는 그 어떤 실재도 없습니다. 사물이 있어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사물’의 개념을 낳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대상들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적 사건들의 세계이며, 사물들은 이 기본적인 ‘사건들’의 발생위에 구축되는 것입니다. 1950년대에 철학자 넬슨 굿맨이 아름답게 표현했듯이, “대상은 한결같은 과정”, 잠시만 자신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끊임없는 의심, 그것이 더 나은 과학의 깊은 원천입니다.

과학 연구의 목표는 예측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과학은 기술이기 이전에 시각입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니체’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 질문하는 태도를 놓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과학은 곧 기술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기술 이전에 시각이라는 저자의 표현과 자세가 참 좋았다.

양자중력은 <모래알 계산>의 탐구를 이어가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의 알갱이를 세고 있습니다. 광대한 우주이지만, 유한합니다.

오직, 우리의 무지만이 무한할 뿐입니다.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체와 대상에 동시적으로 의존합니다. 한 체계의 그 어떤 상태도 또 다른 물리적 체계를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가리킵니다. 고전역학을 이러한 단순한 진리를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고, 관찰자로부터 독립적인 실재에 대한 시각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의 발전은 이러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타인에 대해,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
여전히 고전역학의 시각에서 생각해왔다.
고전역학의 시각에서 벗어나,
‘주체와 대상에 동시적으로 의존한다’는 말을 내 삶을 나를 돌아보는데 적용해 보게 됐다.

2챕터부터는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저자의 시각을,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물리 전공자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살면서 평생 펼쳐볼 일이 없었을 것 같은 책.
시와 과학에 대한 언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내 시야를 아주 살짝은 돌려줬다고 생각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