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화제가 됐던 그 작가의 신작.
김영민 작가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네이버 책검색 결과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전자도서관에서 빌려서 하루만에 킥킥 거리면서 웃으며 봤었다.
몰입도가 상당해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역시 그렇게 읽고 만 책은 기억에 남는 것이 크게 없다.
이 작가님 꽤나 웃기게 글 잘 쓰시는구나 정도의 감탄만 남을뿐.

이번에는 알라딘이북을 구매해서 한 일주일 정도 아껴가며 읽었다.

역시나 작가님의 유머 감각은 그대로였고, 학문하는 사람답게 공부하는 자세, 삶의 태도를 쉽게 이해가 가도록 명료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비유적 표현을 많이 담아서 쓴 글이었다.

완벽하게 일관되고 통합된 삶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마련. 모순 혹은 긴장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를 그럭저럭 거두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일이며,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모순 없는 글쓰기에서 인용했다. 자신의 모순이나 긴장을 빙자하여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라고 했는데 이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시민의 덕성을 기르기 위해 어른들도 끊임없이 상기하고 노력해야 가능한 것 같다.

수업은 남이 차려준 밥상을 자기 입맛대로 먹는 시간이 아닙니다. 선생은 선생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수업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학생 역시 선생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해야 합니다.

수업 첫시간에 안내하신다는데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읽혔다.
수업 첫시간을 잘 시작해야 그 학기, 그 해가 순조롭게 계획대로 흘러간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시간인데 꼭 필요한 말들을 귀에 콕콕 박히게 잘 전달하시는 것 같다.

학기 말에 성적이 원하는 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낙담하지 말기 바랍니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소망과 객관적인 평가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사회에 통용되는 성적표와 추천서가 신뢰를 잃게 됩니다. 적폐가 따로 있겠습니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쌓이면 적폐가 됩니다.

열심히 한 것과 잘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많다.
그래서 ‘일부’ 겠지만 결국 ‘시비걸기’로 평가무효화시키기, 재평가기회얻기 등을 시도하기 때문에 ‘공정성’이라는 미명하에 지필평가의 위상만 날로 높아지는 것 같다.
대학교수들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시달리는 정도가 높아지겠지.

헛소리를 일삼는 상대에게 자비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 저 사람이 체력이 달려서 저러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체력이 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집중력이 떨어진다. 사고력이 저하된다.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헛소리를 하게 된다.

‘지적인 헛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 공부와 체력’ 파트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모든 분야에서 체력은 기본이겠지만 공부도 마찬가지. 공부와 체력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체력을 길러야할 시기를 놓치면 중장년이되어 ‘밑천이 드러났을 때’ 대응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자,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다. “에너지 절약이 관건이다. 앉을 수 있는데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누울 수 있는데도,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유명인의 말들을 많이 인용한 책이지만 그 중에 으뜸이다.
에너지 절약.
하지 않아도 될 고민, 당장 해봤자 쓸모 없는 고민과 일들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 열심히 점검해봐도 현명하지 못하게 에너지를 썼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많다.

책을 왜 읽는가? 어떤 이는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프랑스의 비평가 에밀 파게는 말했다. “독서의 적(敵)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질투와 경쟁으로 뒤흔들리고, 우리를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질투와 경쟁으로 뒤범벅이 된 사회, 그 모래 지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은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독자에게 집중력과 몰입을 요구한다. 숨죽여 책에 집중해 있노라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독서가는 참평화를 얻는다.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은 말했다. “독서는 제게 유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이 작은 우주선에 중독된 나머지, 나가서 뛰어놀지 않고 책 읽기에만 매진하다 보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느니 자신에게 과몰입해 있는 사람이라느니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정신의 날 선 도끼를 찾기 위해서 : 독서란 무엇인가 파트도 재미있었다.
수전 손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최근의 읽은 ‘시선으로부터’의 인물들 중 ‘난정’은 딸이 투병을 하게 되면서 직장도 그만두고 간병에 몰두하며, ‘죽음’을 잊기 위해 읽기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책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일 때가 많다. 그만큼 중독되기도 사실 쉽다.

무엇인가 모아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은 것을 적절히 정리하지 않는 한 그 자료를 아직 완전히 ‘발견’된 것이 아닌 셈이다.

자기만의 인덱스를 만드는 것이 좋다 : 자료정리 파트를 읽으며 ‘에버노트’ 앱을 생각하게 됐다.
남편이 정말 좋은 앱이라며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했고,
‘에디톨로지’를 읽고 나서 오래오래 곁에 두고 쓸 앱이라는 생각에 유료로 사용한지 꽤 된 앱이다.
현재는 ‘제2의 두뇌’가 아닐까, 물론 내 휴대폰도 그렇겠지만, 폰을 잃어버려도 ‘에버노트’는 계정이 남으니 제발 이 회사가 두고두고 망하지 않고 이상해지지 않기를 빌고 있다.
거창하게 논문 작업을 하고 뭔가를 연구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본인만의 인덱스는 필요하다. ‘에버노트’앱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예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수동적인 관전자로 남으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로 한 토론의 장에서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은 무임승차자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사실 대학 신입생 시절, 어마어마한 인원을 받아준 교양 수업에서 많은 교수님들이 토론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준비된 상태도 아닌 신입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엉망진창으로 끝난(비싼 학비 받고 교수는 대체 무얼하느냐는 욕과 분노) 경험이 많다.
그 후 내가 수업하는 입장에서도 사실 고3들에게는 토론 수업을 1년에 1회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9등급 상대평가와 수능 디데이 속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수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그런데, 강의식 수업만 진행하는 것과 토론수업만 진행하는 것 모두 문제가 있다.
래포를 쌓고 목표를 뚜렷하게 인식시킨 후에는 토론수업을 1회 정도는 실시하고 아이들에게 무임승차자의 태도를 버릴 수 있도록 내가 기회를 만들어주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나의 신입생 시절처럼 토론수업에서 분노만 얻어간다면 거기에는 내 잘못도 일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무리 결함이 많은 학교라고 해도, 자신이 자발적으로 그곳에 속해 있는 한 무임승차자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뭔가 받아가는 한, 그 시스템이 굴러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이 있다. 학교는 자판기가 아니다. 본인이 등록금이라는 돈을 투입하고, 수업이라는 캔커피를 받아 마시는 곳이 아니다. 선생은 선생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각자 자기 역할에 걸맞게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배움의 현장이 제대로 굴러간다. 학교는 아쉬울 때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만 받아 챙겨 떠나는 곳이 아니다.

평생을 학교에 소속된 분이라 그런지 ‘공부란’,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많이 내놓으시는 것 같다.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내가 만나는 아이들, 한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는 여기가 ‘자발적으로 속해 있는 곳’은 아니라는 항변이 나오겠지만.
선생의 역할을 내가 다하고 있는가, 학생에게 학생의 역할이 무엇인지 충분히 가르쳐주고 다하도록 요구하고있는가를 생각했다.
“자판기 취급한다면, 그래 나도 그냥 자판기로만 역할을 다하자”의 태도로 최소한만 하자의 마음으로 자꾸 기울어지지 않았는가를 반성했다.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면서 유머와 삶의 태도, 좋은 그림들까지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내 직장이 학교이다보니, 내가 ‘선생’으로 살다 보니 ‘학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읽게 됐다.
대학에 다니면서 배우는 기쁨, 글쓰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신 교수님이 딱 한분 계시는데 그분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복수전공을 하며 그렇게 수많은 수업을 들었지만 딱 한분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니.
벌써 찾아뵌지도 몇년이 흘러서 좀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연락을 드려봐야겠다.
그 분 수업을 듣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고 뵙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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