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같은 소리지만 싱가포르에서 한번도 혼자서 외출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혼자서 콘도 울타리 밖에 나갈 일,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콘도 내에서 헬스장 가고 수영장 가고, 미니슈퍼 가면서도 충분히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싱가폴 내부에서 막 엄청 가보고 싶은 관광지도 없다 이제…
떠나오니까 그리운 한국의 관광지들 ㅠㅠ
그런 어린이 같은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오늘 첫 외출을 하고 왔다.
인터넷으로 읽기와 문법, 전화로 말하기 레벨테스트를 보고 왓츠앱으로 상담한 끝에
등록하기로 한 영어학원의 첫 수업일이었다.
1시 수업인데 집에선 좀 거리가 있으니까 여유있게 가서
지하철 역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에 적당한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학원에 들어가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가 않아서 일단 학원건물을 찾아가서 등록을 했다.
그 건물에 뭐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온통 학원인 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다.
카드로 결제하고, 교재도 받고 직원에게 가장 가까운 카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알려주었다.
그런데 알려준 건물은 영… 들어가는 입구부터 좀 당기지 않았고 건물을 한바퀴 둘러보니 바로 옆에 세상 깔끔한 건물과 BHC치킨이 반갑게도 보였다.
그 건물로 들어가보니 오빠짜장이 있었고, 마침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팔고 있어서 점심 식사도 편안하게 했다.

어색한 영어로 ‘원 튜나김밥…’ 하는데 ‘한국분이세요?’ 하며 응대하는 직원 덕분에
편안한 한국말로 주문했다.
‘영어를 안배우고도 살기에는 별 문제 없겠다, 아직 결제 안했는데 그냥 학원 가지 말까’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면서 김밥을 먹었다.

여기와서 늘 냉동김밥만 먹다가,,, 1달 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캔음료 하나와 참치김밥 한줄 해서 11.9싱딸.
한국보다는 당연히 비싸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학원까지는 길은 건너야 하지만 그래도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수업을 다니면서 점심 장소로 애용할 것 같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온 첫 수업.
선생님과 다른 학생분들 모두 여자분이시고,
나를 포함해서 학생이 셋인데 학생 셋의 국적이 한중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더 잘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나보다는 싱가폴에 온지 조금 더 오래된 분들이고 발음도 유창하셨다.
더 열심히 내뱉고 더 열심히 외워야겠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문법인데,
예문 만들어서 대화해보려니까 왜이렇게 안튀어나오는걸까.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 동안 문법, 읽기, 듣기, 말하기를 했다.
아주 정신없이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까지 한 50분 걸려서 왔고 바로 에어컨 틀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세상 피곤하다.
온라인으로 이것저것 더 해볼까 하다가
싱가포리안 친구들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영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오프라인 학원에 나가보는 것을 적극 추천해서 결심하고, 나름대로 거금을 투자한 결정이었다.
대한민국의 대졸자 중에서 영어 공부를 안하고도 취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고, 영어는 수능에서 망한 후로 해본 적 없다고 농담조로 말해왔었다.
그런데 이제 싱가폴에서 살다가 귀국하면 영어를 못한다는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걱정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필수 교양 수업에서 이름도 기억나는 ‘진스 로버트’ 씨에게 영어작문을 배웠는데
거의 영어를 한마디도 안 내뱉고 한 학기를 보냈던것 같다. 원어민에게 지각 사유를 설명하기도 싫어서 지각도 절대 안했다…
거의 20년이 흘렀는데 왜 그 수업이 갑자기 기억이 나는걸까.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열심히 복습하고 즐겁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달 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