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었다.

8월엔 수학.

독서모임에서 수학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소설이다.
생활기록부를 점검하면서 종종 이과아이들이 읽었다고 제출한 기록은 보았지만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는 책이었고,
‘수학으로 소설을?, 그게 가능한가? 완전 노잼 아닌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었다.

책검색 결과.

초반부에 추천의 말 등을 통해서 이 도전의 성공 여부를 알고 읽으니
다른 가족들의 태도도 이해가 가고, 연민의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페트로스’ 본인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서술하지 않고
조카인 ‘나’를 통해서 ‘삼촌’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수학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같은 독자도
‘삼촌에 대한 연민’과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절망할 권리가 있는 거야.” 82쪽

‘새미’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서술자인 ‘나’에게 하는 말들이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많이 드러낸다고 느꼈다.
새미는 작가의 대리인일까.
새미의 말을 듣고 ‘나’가 내리는 판단과 선택들을 보며 그 영향력이 정말 크다는 생각을 했다.

그해 11월, 그는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나이인 서른을 넘어섰다. 이는 사실상 중년으로 접어드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138쪽

올림픽을 보면서 운동선수들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1년이 늦어진 올림픽으로 인해 그 영향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수학소설을 읽으면서도 두뇌활동이 중요한 수학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위대한 발견, 업적을 만들어내는 일은 청년기에나 가능한 일인것인가.
기대 수명은 점점 늘어나는데 인생 초년기가 지나버린 후에는 조금 맥빠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는 그의 신분과 계급에 걸맞게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동료의 한 사람으로서 제안한다며 앞으로는 학문적인 동료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페트로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페트로스가 유별나지 않게 그저 평범하게 연구하는 수학자로 국제 대회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는 한편, 동료들과의 연락을 통해 그들의 연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를 알고, 또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알려주었다면, 대단히 중요한 발견인 두 정리 모두에서 결코 2등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페트로스가 계속 혼자만의 외로운 독주를 고집한다면 제2의 ‘불운한 사태’가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였다. 160ㅉ

하디의 편지내용이었다.
유별나지 않게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진행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교류하지 않고 고독하게 비밀리에 진행했더라도
끝내 성공했더라면 또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니 공을 독차지할 수도 있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페트로스의 선택 자체가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모든 것이 결과론적인 평가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는 스스로 정한 목표를 기준으로 가늠해야 하는거야. 남이 정한 기준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나’는 없어져 버려. 해마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정리들이 수도 없이 발표되지. 하지만 정작 수학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만한 정리는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해.” 163쪽

스스로 정한 목표로 내 인생을 평가한다면,
다른 누구의 잣대도 아닌 내가 세운 목표로 내 지난 날들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이십대 초반에 내린 선택이 달라졌을까.

결국 목표설정의 문제란 말일까.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건 싫었어. 평범한 건 절대로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지. 나는 대용품이나 각주 같은 존재로 영원히 남고 싶지 않아. 그러느니 차라리 완전한 무명인으로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보다 꽃, 과수원, 체스판, 오늘 너와 나누는 이런 대화가 더 좋아.” …

“삼촌 말씀은 결국 전부냐 전무냐의 문제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165쪽

위에서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을 썼는데,
페트로스의 가치관은 ‘전부냐 전무냐’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극적이고 모험이라 할 수 있어도 그는 그의 시간과 삶을 전부에 걸어본 것이다.

새미는 … “… 하디와 리틀우드가 공동 연구를 제의한 걸 보면, 네 삼촌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건 분명해. 어쩌면 네 삼촌은 대단하다 못해 위대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는 도저히 혼자서는 성취할 수 없는 목표를 세웠어. 그 어렵기로 악명 높은 문제에 혼자 대적하겠다고 고집하며 두 사람의 제안을 무시해 버렸지. 그의 죄목은 바로 ‘오만’이야….” 224쪽

사춘기 시절 속물 같고 야비하다고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우리 아버지의 십팔번이 뭐였는지 알아? ‘인생의 진정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건 바로 스스로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세우는 거란다.’ 방금 네가 한 얘기와 똑같았어. 아버지의 지론을 어긴 게 바로 페트로스 삼촌이 겪은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거지.”
새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더니, 너희 집안에서 진짜 똑똑한 사람은 따로 있었구나!” 225쪽

“..오랜 세월의 연구 과정도 충분히 출판해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금세기 최고의 수학적 실패 케이스’란 각주를 단다면 말이야.”
삼촌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저는요, 과학이란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에 의해서도 발전되는 거라고 믿어요.”246쪽

실패에 의한 발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들을 싸그리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페트로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가 연구 과정을 공유하면서 진행했더라면
조카의 말처럼 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었을텐데.

어떻게 보면 동료들에 대한 적의와 스스로에 대한 긍지야말로 천재가 지닌 양면적 특성일터였다. 그렇다고 볼 때 삼촌의 자만심과 동료들에 대한 적의는 새미가 진단한 바 있는 삼촌의 으뜸가는 죄인 ‘오만’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263쪽

천재의 양면적 특성에 공감한다.
이 소설은 수학적 난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실 수학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없다.
수학 보다는 ‘미쳐버린’에 주목하고 싶다.
수학이든 아니든 어떤 분야에 ‘미쳐버렸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어떤 인물, 어떤 천재의 삶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페트로스의 두 동생들의 사업수완이나
페트로스의 아버지가 남긴 ‘특혜’에 가까운 유언이 아니었다면
이 인물이 좀 더 생활인으로서 일상의 강제적인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덜 매력적인 천재가 되었을까.

서술관점이나 인물 설정이 엄청나게 특별하고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쳐버린 수학 천재의 삶을 통해서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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