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마지막으로 읽은책이자 내가 하고있는 독서모임 중 하나의 2021년 1월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지친 2020년 연말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성해지는 책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읽으면서 내내 행복했다.

저자는 어린이책 편집, 독서교실을 하며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와 생활하며 글을 썼다.
책의 앞부분만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듯이 저자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책을 내신 것 같다.
‘부모로서’ 어린이를 대한 경험이 없기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운 태도로 어린이를 대하고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를 환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어린이들의 진솔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늘 우리 가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밑줄을 그은 부분이다. (물론 전자책이니 하이라이트 모음 정도가 된다)
어린이를 생각할수록 어른인 우리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어린이라는 세계’로 지으셨나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최약자이고,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회,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좀 더 읽어나가다 보면, 무조건적 ‘배려의 대상’으로만 어린이를 그리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로부터 배우는 부분들이 오히려 더 많기 때문에 이 책이 더 매력있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많아질수록 어린이의 ‘착한 마음’이 지켜질 수 있겠지, 그게 어른의 역할이고 그래야 어른이 아닐까.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작다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이에게는 점잖음과 정중함을 기대하지도, 대접하지도 않고 지내왔던 것 같다.
고등학생들을 대하면서, 그것도 특히 고3을 주로 만나면서 아이들을 너무 어른취급해서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순간들을 가끔 후회한다.
그런데 어린이에게는? 어린이를 대할 일이 사실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도 별 생각없이 살아온 것 같다.
저자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 그로부터 기대하는 점들, 그리고 배우는 점들이 따뜻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들리는 듯한 책이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社訓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랑’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사랑이라고 해도 될까’가 소제목이었는데 정말 조심스럽게, 깊이 생각해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에서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대면하는 담임선생님으로서
그리고 어린이라고 하기엔 좀 거리가 느껴지는 (법적으로는 아동이지만) 19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똑같이 적용하기에는 다른 부분들도 분명 있지만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공감이 많이 됐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어른들은 흔히 “애들을 위해서 말을 가린다”라고 하는데 어린이야말로 말조심을 한다. 존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서열을 파악하고 어휘를 고르고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다. 경험은 어른보다 적은데 책임은 어른보다 많이 져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 보아 가며 말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
언급된 책은 정말 2019년에 읽었고, 그 해의 (내나름 독서연말결산에서) 베스트 책이었는데 워낙 유명해서 여기저기서도 많이 마주치지만,
위에 인용한 저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특히 국어 문법을 오랜 시간 수업하면서 더 엄격해지기만 했다.
규범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에게 떠넘긴 부담, 아이들의 고생에 너무 신경쓰지 않았구나.
날이 갈수록 ‘버르장머리 없는’ 소통 방식에 분통을 터뜨리는 순간도 많지만, ‘참 고생이 많다’는 저 구절을 기억해야겠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비관론자’, ‘냉소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꾸 그 쪽으로 기우는 나를 붙들기 위해 정신을 차리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저자의 이 차분한 글이 다시 나를 깨웠다.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보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나는 장면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그런 문제일수록 어린이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어린이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까지도 볼 것이다. 달아날 곳이 없다.
왜 언급조차 못하게 하는건지,
‘정치적인 거잖아’ 라는 말로 입을 닫게 하는지 불만스러울 때가 많다.
곤란해 지기 싫어서 달아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 것이다.
‘어른’ 이 되어서, ‘교사’가 되어서 가장 부끄럽고 참담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2학년 담임을 했던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 3학년을 하고 있던 그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아이들은 편안한 선생님, 자기들이 그래도 2년간 봐왔고 작년에 바로 그 회사의 다른 배로 똑같은 코스로 수학여행을 함께 다녀온 나에게
“선생님도 우리랑 저 상황이라면 구명조끼 입고 기다리라고 하셨겠죠? 우리 다 못 살았겠죠?” 라고 묻고
“전 이제 더이상 기자를 꿈꾸지 않아요.”, “이제 어른들이 가만 있으라고 해도 안 들을거에요 제 살길 찾아야죠.”라는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때 그 교실에서 딱 한명 나만 어른이었는데 바닥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너무 큰 슬픔에 다 함께 우울감에 젖어있을 떄이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까지가 ‘정치적인’ 것이라서 아이들과 함께 얘기하면 안되는 것인지 힘들 때가 있다.
자기노출 없이, ‘정치적인’ 모든 것들을 피하며 건조하게 수업하고 건조하게 대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제자로는’ 남지 않는 것 같다.
2020년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이 아이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 같아서 기대에 부응했지만 씁쓸하다.
교육을 이야기하려면 사회를 보아야 한다. 성범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감염병 사태 중에 도서관보다 성매매 업소가 먼저 문을 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마이크가 주어지는 세상에서 학교와 가정이 청정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
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냉소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강한 표현, 분노든 연민이든 쉽게 자극되는 독자인 내게,
2020년 연말에 만난 이 책은 어찌보면 밋밋한, 흔한 에세이일 수도 있었는데
남은 문장들이 많고 다정하고 차분하게 생각을 잘 전달하는 글의 매력을 보여줬다.
어린이를 대하는 사람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