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저자 강연을 들었다.

오늘은 2020년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전문적학습공동체의날이었다.
소속 지회에서 공문을 보고 신청했었고, 매년 하는 행사지만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ZOOM을 활용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었다.

올해의 초청 작가는 ‘홍승은’ 작가님이셨고 미리 작가의 책을 읽고 오면 더 좋겠다는 공문을 보고 부랴부랴 책을 구입했다.

알라딘 이북에서 캡쳐한 책표지

홍승은 작가로 검색을 해보니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가 많이 검색되어 나왔고 굉장히 이색적인 삶의 흔적들이 따라 나왔지만 우선 ‘쓰기에 관한 책’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오늘의 주인공 책
줌으로 만난 홍승은 작가님

책을 이틀 동안 집중해서 읽고 강연까지 듣고 나니 읽기 모임에서 쓰기도 병행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가지 인상깊은 구절을 인용해 본다.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은 위험하다.

글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작가는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로 존재하지 않고 서사로, 입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관심이 큰 것 같았다. 이 표현은 강연에서도 많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야 할까, 하는 불평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세울 수 있는 선택의 여유는 내가 누리는 기득권이고, 누군가에게 혹은 어느 동물에게는 숨 막히게 싸워야 할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걸 지금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다른 존재의 불행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고.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생각하면 할 수록 피곤해진다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 마음이 뜨끔해졌다.

누군가를 풍경의 배경으로 여기는 것만큼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간편한 방식은 없다. 글에 생기가 줄고 관점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먼저 내 애정을 의심한다. 눈앞의 존재를 고정된 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비문이나 맞춤법은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차별적인 언어는 누군가의 상처를 찌르고 눈물샘을 건드린다.

내가 국어교사로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수능 국어영역 문제를 빠르게 정확하게 푸는 스킬 연습에 몰두할 때, 아이들의 글을 읽고 채점하면서 맞춤법과 비문에만 주목할 때가 더 많다.
차별적 언어 사용임을 알려주고, 상처주는 의사소통 방식을 경계하도록 길러내야하는데 놓치는 경우가, 교사의 무력감에 사실 외면하는 경우가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잘 읽는 법 체화하기’를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정한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태어날 때 누군가 지어준 이름 대신 자기가 불리고 싶은 이름 정하기. 나이, 학력, 직업, 성별, 성적 지향을 묻지 않기. 기존의 호칭과 역할은 제쳐두고, 그 자리에는 함께 쓰고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만 남겨둔다. 첫 시간에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지침을 참고해 몇 가지 사항을 공지한다. 독서와 필사 습관 다지기.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해서 정해진 매체에 올리기. 다른 사람의 글에 피드백 남기기. 책을 읽을 때 감응한 부분, 글쓴이가 메시지를 전달한 방식에서 참고할 부분 공유하기.

몇 년째 읽기 모임을 함께 해온 분들과, 또는 새로운 인연들과 시도해 본다면 필요할 것 같아서 참고용으로 남겨 본다.

쓰기를 시작해보려고 이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또 살짝 게을러졌었다.
작가님도 인스타, 페이스북, 블로그 다양한 ‘방’들에 쓰기를 했던 경험을 책 속에 공유해주셨는데 각자 장단점이 있으니 나도 또 열심히 끄적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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