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간만에 극장에 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보고 싶던 영화들을 다 뒤로하고 넷플릭스와 올레티비로 버텼었다.
평일 밤에 다녀온 극장은 생각보다 방역에 철저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오히려 일상에서 많이 가는 카페나 마트보다도 안전하게 느껴졌다.
물론 1자리씩 비우고 앉아도 표가 다 팔려서 꽉 찬다면 느낌이 달랐겠지만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조용히 영화만 본다면 괜찮을 것 같다.
다시 개봉 예정작들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이 영화는 개봉하면 꼭 봐야지 했던 영화였다.

우선 주연배우가 셋 다 여성이다.
‘언제 이만큼 컸어?’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고아성 배우가 주인공이었다.
이솜 배우는 출연작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연기를 잘하고 캐릭터를 현실감있게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출연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혜수 배우는 <스윙키즈>에서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고아성, 이솜에 비해 체구가 작다보니 귀엽게, 챙겨주고 싶은 친구의 모습이 잘 어울렸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이런 이미지로 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1995년을 배경으로 대기업에 근무하는 고졸출신 여사원들이 회사의 잘못을 발견하고 진실을 밝히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이다. 너무 짧게 요약해 버렸나?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요소가 참 많다.
우선 그들만 입고 있는 불편해보이는 유니폼부터 눈에 띈다. 박혜수 배우의 대사에도 있었지만 고졸출신이라는 딱지를 얼굴에 붙이고 다니는 것과 같게 느껴진다.
입사 8년차 임에도 커피타기는 물론이고 청소, 재떨이비우기, 담배심부름, 구두방심부름 등 도저히 회사의 ‘업무’라고 보기 힘든 온갖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 일쑤다.
아이디어는 뺏기고 공은 없고 책임만 지우는 자리에서 만년 ‘사원’인 그들이 대리 진급의 꿈을 갖고 토익공부를 한다는 설정이다.
또박또박 귀에 박히는 한국식 영어를 열심히 외치면서 갖은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기업의 부속으로 변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또한 절친한 사이인 주인공 3인방 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배경처럼 등장했던 다른 고졸 여사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함께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여적여’ 구도가 아닌 동반자, 협력자로서의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더 재미있었다.
물론 ‘왜 저래?’ 싶은 대졸 여직원도 한 명 등장하지만 밉상 캐릭터도 필요하겠지 싶은 생각에 참고 봤다.
영화는 여러번 긴장과 해소를 반복하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긴장된 순간은
꼬박꼬박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나름대로의 ‘존중’을 보여주던 남자 대리와 주인공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뭔가 ‘그것이 알고 싶다’도 생각나고 어두운 시골길에서 무슨 일이 나지는 않을까 무섭기까지했는데 그래도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현실에서 이게 가능하겠어?’, ‘얼마나 현실적으로 잘 만들었나?’하는 평가자적인 마음을 어느새 내려놓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촌철살인의 대사들과 주인공들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덤으로 따라온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큰 영화들도 개봉을 미루고 숨을 조이게 하는 시기지만
이렇게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는’ 영화가 입소문이 많이 나서 흥행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페미’ 영화라며 초 치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요소들이 많다.
위계질서, 부품이 된 느낌, 상명하복, 기업윤리, 배신 등등
정확히 대사를 받아 적지는 못했지만
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내 직장. 그 시간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인공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직장은 어차피 월급을 받으러 나온 곳인데 그 안에서 무슨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나, 퇴근시간까지 버티는거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참 많지만
저 순수한 마음을 아예 잃어버리고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