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았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10월의 첫 출근일이었다.
우리 학년만 온라인 수업이고 1,2학년이 등교를 하다니 올해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학교에 교복을 제대로 갖춰입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생기있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는데 정말 고3과는 다른 느낌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모습.
아무래도 고3은 지금껏 근무한 3개 학교 모두, 생기없고 시들시들한 모습이다. 1,2학년에 비하면.
돌이켜보면 올해 추석은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고3담임이지만 방해받지 않고 오롯한 개인으로 긴 연휴 기간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바로 아래의 2가지 덕분이다.
첫 번째는 미리 준비해둔 강의영상 2일치.
그래서 걱정없이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3학년 수업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수험생처럼 맨날 ebs연계교재 문제를 미리 풀고 어떻게 축약해서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나를 고민하며 산다. 교무실 풍경을 봐도 다들 문제푸느라 바쁘다. 가끔 내가 수능시험 보러 가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딱 1번 같은 교과서로 2년 연속 고2 문학 수업을 했을 때 어찌나 행복하던지. 기본적으로 교재연구는 다 되어 있고 만들어둔 학습지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더 참여를 이끌어내는 수준에서 교재연구를 해보니 참 행복했었다.
그러나 뭐…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수능준비 수업으로 매년 새로운 제재가 담긴, 새 문제가 담긴 교재를 풀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오로지 ‘강의’만 깊이 있게 준비해서 전문적으로 촬영한 분들의 강의영상과 비교당하며 온라인 수업까지 하다니… 또 쓰다보니 푸념으로 흐른다.
다시 ‘덕분에’로 돌아와서 두 번째.
2월에 개통한 나의 투폰이다.
이 투폰 덕분에 직장생활과 사생활을 그나마 분리할 수 있다. 물론 학교와 동료선생님들께는 원폰 번호를 공개해서 휴일에도 우리 학년부 단톡방은 문의와 답변들로 울리기는 했다.
그래도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는 투폰 번호만 공개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적응하신 것 같다. 24시간 문의를 남길 수는 있어도 답변은 출근일 아침에 온다는 것을.
이 당연한 것을 도저히 원폰으로는 인식시킬 수가 없어서 담임교사를 맡는 내내 교육도 해보고 화도 내보며 괴로워하다가 드디어 투폰을 사비들여서 개통했다.
알뜰통신사 만세!
정말 2020년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새벽에도 술 취한 채 담임교사에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 게임아이템을 보내고, 부부문제 상담까지 하고 싶어하고, 진짜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욕설이 섞인 문자도 받는 것이 담임이라는 직업의 현실이다.
상대방도 직장에서 퇴근하고 쉬고 있을 시간인 것을 뻔히 알면서 밤 12시에도 급하다고 전화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정말 심각한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비상연락망이 있고 학교로 연락하면 결국 다 연락이 닿기 때문에 원폰은 학교에 공개했다.
이렇게 2가지 덕분에 5일 간 가족들 생각하고 친구들 생각하며 푹 쉬고 충전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생과 마찬가지로 교육부에서 만든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으로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엄청난 혼란을 거쳐 이제 앱으로 정착되었다. 미응답한 학생들에게 앱으로 알림을 보낼 수 있다는게 정말 큰 장점이다.
건강상태 진단에 대해서도 글 하나를 쓸만큼 사연이 많다. 앱이 도입 된 날도 교사들 아무도 몰랐고 ‘오늘부터 이걸로 해 비밀리에 우리가 만들었어’ 하는 식으로 느껴져서 참 어이가 없었지만 이 정도면 짧은 기간에 많이 노력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안 막히면 약 40분 정도 운전을 해서 학교에 도착.
학년부 체제인 것에 감사하며, 담임이 정신없어서 우리반 아이들이 공지사항을 놓치는 것이 없도록 챙기는 시간이다.
물론 거의 약이라 생각하며 마시는 커피도 한잔 마시며 조회 전 시간을 보낸다.
8시 50분부터 조회. 노트북을 들고 우리 교실로 가서 줌 회의 대기실을 바라본다.
사실 정식 근무시간은 8:50~16:50이지만 담임은 도저히 불가능한 업무시간 설정이다. 종례는 16:50분부터하니까.
조회는 제때제때 아이들이 줌 대기실에 싹 모여주면 좋으련만… 꼭 한둘은 연락두절이기 때문에 일단 와있는 아이들 출첵하고 전달사항을 하고 나면 1교시 교실로 뛰어가야한다.
그래도 온라인 수업 기간이라서 조회 시간에 출첵 및 공지사항 전달에 이어지는 방역활동을 안해도 되어 기뻤다.
비접촉체온계로 한명 한명 발열체크, 소독제와 티슈로 책상,교탁, 문손잡이 닦기는 안 해도 된다는 점에 기뻤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시키고 싶지 않아서 모든걸 내손으로 직접했더니 물리적으로 도저히 시간이 부족해서 책상 닦기는 이제 각자한다.
코로나 시대의 하루 시작은 방역. 방역활동이 일상이 된 2020년의 10월이지만 솔직히 지치긴 지친다.
1교시가 없는 날이라면 연락두절 아이들에게 전화라도 한통 해볼텐데 노트북에 프린트에 바리바리 챙긴 에코백을 매고 해당 반 교실로 뛰기 바쁘다.
운 좋게도 20년 2월에 새 노트북을 받아서 기뻤지만, 줌 수업을 2시간 연속하기에는 배터리가 도와주지 않아서 어댑터까지 싸들고 다니느라 한 쪽 어깨가 쑤신다.
그래도 사비로 노트북을 사서 쓸 만큼 노후화된 기기를 받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살고 있다.
1-7교시 중에 4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중간 중간 빈 시간에는 업무를 처리한다.
아이들은 수업 중이지만 학부모님들하고는 연락할 수 있으니 각종 서류처리, 문의내용 답변 등을 해결하다 보면 계획했던 교재연구, 수업준비를 못한 채 공강 시간이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다.
딱 1년만 비담임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럼 더 큰 행정업무에 치여서 담임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될까.
직장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큰 요소가 바로 화장실이다. 학교에 12시간 넘게 있는 날도 많으니 여러 번 갈 수밖에.
그런데 교직원 화장실은 1층에만 2개가 있다.
우리 학년부 교무실은 4층인데 다녀오면 쉬는 시간이 끝나 있는 슬픈 현실이다.
첫 학교에서, 지금보다 더 열정만 넘치고 몸을 돌볼 줄 모르던 시절. 그때도 근무는 4층, 교직원 화장실은 1층이었는데 화장실 다녀오기가 어렵다보니 물도 잘 안마시고 근무하다보니 방광염에 걸렸었다.
목은 아껴야 한다고 일찍 마이크를 사용했었는데 방광염은 생각도 못한 질병이었다.
암튼, 지금도 왜 교직원 화장실은 1층에만 있는지 모르겠지만 빈 시간에 (쉬는 시간이 아닐 때) 가까운 학생 화장실을 사용하며 잘 버티고 있다.
학생들과 왜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면 안되는 거냐고 물으면, 학생도 불편 교사도 불편 정도로 답할 것 같다. 길게 쓰면 또 한없이 길어지는 주제니까.
학생이나 교사나 행복한 점심시간.
코로나 때문에 한 방향으로 홀로 앉아서 혼밥을 하기 때문에 새로 옮긴 직장에서 동료들과 ‘밥먹는 정’이 쌓이긴 어렵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급식이다.

내 수업이 없는 빈시간.
그래도 우리 교실은 해당 교과 선생님께서 사용하시기 때문에 특별실 어디가 비어있나 하이에나처럼 헤맨다.
적당한 곳을 찾아 문을 닫고 홀로 빈 교실에서 강의 영상을 찍는다.
아이패드로 필기와 목소리만 나오게 만드는 짧은 영상이지만 만족스럽게 만들려면 몇 번을 해봐야 하기 때문에 공강시간 활용이 중요하다.
오늘도 무사히 다음 차시 문제풀이 영상을 제작했고 내일 출근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간자율학습.
고등학교 때는 야자가 없는 학교를 다녔고,
첫 학교에서는 10시까지 야자 감독을 했고, 두 번째 학교에서는 9시까지 야자 감독을 하다가 내가 옮기던 해에 이제는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세 번째 학교인 지금 학교는 야자가 10시까지라는 소식을 듣고 좌절하다가 코로나로 방과후 활동이 다 없어졌다는 소식에 기뻤다. 기뻐하면 안되는 상황이지만 솔직히 기뻤다.
그래서 아침 자습실 감독을 제외하고는 심야에 학교에 남을 일이 많이 줄기는 했다.
학부모, 학생 상담 등으로 아직도 많이 남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습실 감독으로 남는 건 아니니까.
그 전에는 어둑어둑한 학교에서 자습실에 학생 1,2명이 있는데 (솔직히 일대일 상황도 많았다) 내가 자율학습을 감독하고, 아이들을 책임지고 지키는 역할에 놓여있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었다.
학교는 외부인의 출입이 너무나 쉽고, 솔직히 최악의 경우 그냥 내가 먼저 죽겠구나 생각이 들 때도 많았으니까.
강제 야자가 없어진 것은 정말 반갑지만 강제가 아니니 극소수를 위한 감독활동은 오히려 힘든 점이 많았다.
5일간 푹 쉬고 (거의 가을방학수준) 나간 학교.
가끔 다 그만두고 사람 안보고 집에 콕 박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오랜기간 꿈꾸고 간절히 바라서 얻은 내 자리를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도 한다.
당장은 한글날이 지나고 나면 성탄절까지 아무런 휴일도 없다는 소식에 슬프지만.
하루하루 평안하게, 특히 올해는 환자 없이 무사히. 올해 아이들의 졸업일이 오기를 기다린다.